오래전부터 돼지는 장기이식용 동물로 적합한 후보였다. 사람과 장기 크기가 비슷하고 새끼를 10마리 이상 낳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하면 많은 장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난관이 남아 있다. 돼지 조직을 환자에게 이식하면 즉각 면역 거부 반응이 생긴다. 돼지에는 해가 없지만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병원체도 문제다.
지난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변형 돼지의 사용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난관을 한 단계 넘어선 것으로 들려 반가웠다. 면역 거부 반응의 원인물질 하나를 없앴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용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승인됐다는 대목에서는 의아했다. FDA는 2015년 보통의 연어보다 두 배 빨리 자라는 유전자변형 연어를 식용으로 승인해 현재까지 논란 중이다. 이제 유전자변형 동물로서는 두 번째로 돼지가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이번 돼지를 개발한 리비비코어는 1996년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 회사의 미국 계열사다. 변형의 대상은 돼지 세포 표면의 알파갈이라는 당 성분이었다. 알파갈은 돼지뿐 아니라 소나 양의 고기를 먹었을 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로서, 특정 진드기에 물리면 증세가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국내에서 ‘붉은 육류 알레르기’ 성분으로 불리기도 한다.
리비비코어는 알파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를 선보였다. 국내외 언론 매체를 보면 회사의 원래 목표는 의료용 동물의 개발이었으며, 실제 장기이식에 적용하려면 장기적으로 별도의 연구와 절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이 돼지고기를 먹었을 때 알레르기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당장 활용이 가능한 식용 승인도 신청한 것 같다. FDA에 따르면, 이 돼지고기는 일반매장이 아니라 우편주문으로 판매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회사 측은 소비자의 반응을 의식해서인지 판매 일정은 아직 잡아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FDA의 이번 결정은 유전자변형 동물을 식용과 의료용으로 동시에 승인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승인 절차가 예전보다 간단하고 신속히 이뤄진 사실이 눈길을 끈다. 2008년 FDA는 돼지를 비롯한 가축을 복제해 만든 개체의 고기와 우유가 인체에 안전하다며 세계 최초로 그 식용 판매를 허용한 바 있다. 1990년대 말 시작된 육류업계의 요구로 10여년의 논란을 거쳐 내려진 결정이었다. 연어의 경우 1995년 승인 신청 이후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급속히 승인이 이뤄졌다는 평이 많다. 또한 FDA의 보도자료에 구체적인 유전자변형 방법이 나오지 않아 연어처럼 표시를 한다는 것인지 아예 표시가 면제된 것인지 불명확하다. 더욱이 알레르기의 유발 여부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자료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문득 유전자변형 돼지가 등장하는 영화 '옥자'를 봤을 때의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다. 다만 영화와 현실에서 한 가지 차이는 있다. 유전자변형 생명체를 식용으로 심사할 때 영화에서처럼 엄청 거대한 종류는 승인될 수 없다. 가령 알파갈이 없다는 점 외에 체중이나 고기 성분 등이 일단은 보통의 돼지와 유사해야 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유전자변형 돼지는 도축되기 전이라 해도 겉모습만 봐서는 누구도 정체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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