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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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이길

입력
2020.12.24 16:00
수정
2020.12.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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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크리스마스 아침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던 때가 있었다. 내가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 우리 가족이 지금은 충남 보령시가 된 대천에서 1층엔 주인집 슈퍼가 있는 주택의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을 때였다. 겨울이면 거실 중간에 있던 연탄 난로 위에다 떡을 구워 먹던 그 집에서 12월 25일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놓고 갔다던 선물이 있었다. 오늘 밤은 기필코 산타클로스를 보고 말겠다 다짐하던 오빠에게 들키지 않고 어떻게 산타할아버지는 몰래 선물을 놓고 갔는지, 또 어떻게 내가 원하던 딱 그 장난감을 알고 놓고 갔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했고 신났었다. 서랍장에 걸어놓은 양말에는 동전도 한 주먹 들어있었는데, 그때 500원짜리라도 하나 끼어 있으면 그 큰 동전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던 때였는데, 예수님 생일 아침이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설레고 행복했었다. 선물 받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기어이 오빠와 싸워서 엄마가 장난감을 압수해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었는데,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오빠의 꼬임에 넘어가 냉장고에 식탁의자를 놓고 장난감을 내려서 가지고 놀다가 엄마한테 더 혼나고 눈물을 짜던 크리스마스도 있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싸워도, 혼나도 행복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 참 서글픈 때도 있었다. 스물세 살의 여름에 교통사고를 만나고 두 달이 조금 넘게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그래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는 집에 갈수 있을 꺼야’라는 희망이자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의약분업으로 의료 파업이 있었던 그해 가을엔 아무런 수술을 받을 수 없었고 어찌어찌 병원을 옮겨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18시간에 걸친 수술로 인조피부라는 것을 이식했는데, 일주일 후 치료를 받던 중 의료진이 했던 혼잣말로 그 인조피부마저 다 녹아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 누구도 힘들다는 말조차, 내색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다. 한 명이라도 무너지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던 시간이, 그렇게도 길게만 느껴지던 하루가 그래도 흘러서 야속하게도 이때쯤이면 집에 갈수 있으리라 바랐던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이제는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희망을 품는 것 조차 두려운 상황에 나는 여전히 얼굴에 피부도 없이 병실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 친구들이,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초중고교 동창들이, 교회 식구들이,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이,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지인들까지. 조심스러워 병문안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민하며 골랐을 예쁜 카드 위에 정성스레 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다. 나의 회복을 기도하며 나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때는 내 손가락으로 카드조차 잡을 수 없었던 때여서 옆에서 가족들이 카드를 읽어 주었는데, 한 번 보고 읽고 놔두기가 너무 아까워서 카드를 모두 내 침대에서 보이는 벽면에 붙여 달라고 했다.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그해 성탄절 아침,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응원이었다. 각자 다른 사람이 다른 카드에 적었지만 한가지 응원이었다. “혼자가 아니야, 지금 옆에 있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이 지금 네 옆에 있어.”

지금껏 그 카드가 채워진 벽을 떠올리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던 그해 나는 살면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았고, 이듬해 봄에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오늘 서글픈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으며 그 한 사람이 떠오른다면 늦지 않았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메시지, 전화 한통 하면 좋겠다. 당신이 있어 내가 혼자가 아니듯,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주자고 얘기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바라기는 이 글이 마음이 시린 상황에 놓여 있는 어느 분께 병실에서 내 눈 앞에 보인 카드와 같았으면 좋겠다. 우리 서로 잘 모르지만, 2020년을 함께 살아온 당신이 따뜻한 성탄절을 보내기를,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여기 있음이 또 하루를 살아갈 힘과 응원이 되면 좋겠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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