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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0.12.24 01: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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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30대 아들과 함께 살던 60대 노모가 사망한 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다세대주택 계단에 11일 오전 버려진 물건이 쌓여 있다. 이한호 기자

12월 3일 30대 아들과 함께 살던 60대 노모가 사망한 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다세대주택 계단에 11일 오전 버려진 물건이 쌓여 있다. 이한호 기자


“어머니는 몇 달 전 사망한 채 집에 방치됐고, 장애인 아들은 노숙을 한대요.”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방배동 모자의 비극’으로 소개된 이 사건. 처음 제보를 받았을 때 큰 일 났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편으론 너무 충격적인 얘기라 이게 사실일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제보 다음 날, 바로 김모씨 모자가 살았던 다세대 주택을 찾았다. 실제 모습은 제보로 들었던 것보다 심각했다. 현관문을 여니 우편함엔 각종 통지서가 빼곡했다.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체납 고지서, 채권 변제 촉구서, 민방위 교육 안내문까지. 집 앞엔 구청에서 보낸 마스크도 쌓여 있었다.

“돈을 내라.” “요금이 밀렸다.” “교육을 받으라.” “마스크를 써라.” 이 나라는 김씨 모자에게 ‘의무’만 강요했을 뿐, 국가와 사회가 응당 져야 할 보호의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형식상으론 분명 이 나라 ‘관리망’ 안에 존재했으나, 아무도 이들이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집밖에서 노숙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방배동의 비극은 복지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와 동의어였다. 취재를 할수록 현실이 드러났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지만 생계·의료급여는 받지 못했고, 공공근로로 생활을 이어갔으며, 아들 최씨는 장애인 등록도 되어 있지 않았다. 수도·전기·가스 요금이 밀리고, 휴대폰 요금이 체납되어 연락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2008년 11월부터 건보료가 밀렸음에도 관리망은 작동되지 않았다.

비극의 뒷감당마저 나라가 아니라 우리 주변 평범한 이웃들이 맡았다. 민간의 사회복지사 정미경씨는 노숙하던 아들 최씨를 발견했고, 이성우 경위는 갈 곳 없는 최씨에게 쉴 곳을 내주었다. 국가는 기사가 나간 뒤 세상이 시끄러워진 다음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복지 예산으로 한 해 70조원을 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스템은 엉성하고 성겼다.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2017년 관악구 탈북 모자 등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뿐이다.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복지 혜택을 주지 않으려는 정부의 완고함, 장애인으로 등록하려면 수백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해야 하는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참에 '신청주의 복지'가 가지는 한계를 벗을 필요도 있다. 이 나라의 복지 혜택은 '정말로 어려운 이'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더 잘 드러내는 사람'이 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취약가구를 사전에 걸러낼 빽빽한 안전망, 의지가 약하고 몸이 불편해 힘들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끝까지 찾아내려는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또 'OO동의 비극'은 어디서든 발생할 게 분명하다.

김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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