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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주거기본법’이 제정된 건 2015년이다. 그 전까지 주택 및 거주에 관한 법률은 주로 주택을 짓고 공급하는 정책을 규율하는데 초점을 뒀다. 1973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은 건설회사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주택을 신속하게 건설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정비한 것이었다. 2003년에 제정된 ‘주택법’은 국민 주거 안정과 주거 수준 향상 개념을 보강한 법률이었지만, 그래도 주택 공급량 확대에 초점을 둔 정책 기본방향은 여전했다.
▦ 주거기본법은 주택정책의 기본 전제와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었다.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걸 넘어, 기본적 인권으로서 국민의 주거권을 직접 표명하고, 그 내용을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제2조)’로 규정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해 주거의 질적 개선을 겨냥한 주택정책 준수사항(제3조)도 구체화했다.
▦ 대충 봐도 훌륭한 대목이 많다. 소득생애주기에 따른 주택 공급 및 주거비 지원을 통해 주거비를 부담 가능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양질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고,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방향까지 명문화했다. 하지만 법은 법일 뿐이다. OECD는 적정 주택가격을 연소득의 5배 정도로 본다. 그런데 국내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직장인 평균연봉의 15배 내외까지 치솟아 있고, 임대주택 공급 확대는커녕 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상황은 다주택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게 현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끝없이 억제책을 내놨어도 결국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엔 한 여당 국회의원이 아예 ‘1가구 1주택 원칙’을 아예 명문화한 주거복지법 개정안까지 발의해 논란을 사고 있다. 자본주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선언적 규정이며 구속력은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선언만으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좀 모자란 거고, 생색이나 내자는 속셈이었다면 무책임하고 가증스러운 과잉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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