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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포터의 특별한 선물

입력
2020.12.25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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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Visible human Project(VHP)

시신을 기증해 2만7,000여 조각의 디지털 인체 데이터로 남게 된 수전 포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화면.

시신을 기증해 2만7,000여 조각의 디지털 인체 데이터로 남게 된 수전 포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화면.


독일 출신 미국인 수전 포터(Susan Potter, 1927.12.25~2015.2.16)가 콜로라도 의대 휴먼시뮬레이션센터장 빅터 슈피처(Victor M. Spitzer)를 찾아온 것은 2000년이었다. 사후 자신의 육체를 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는 거였다. 만 72세의 포터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앓고 있었고, 당뇨 증세도 심해 여생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사는 동안 유방암과 교통사고 등으로 수술만 무려 26차례 받은 터였다. 그렇게 의학에 신세를 져온 만큼 시신으로나마 보답하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슈피처 박사는 "해부를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정상적인 몸이며, 질병을 앓는 몸은 적당치 않다"고 사양했다.

하지만 포터는 거의 매일 찾아오다시피 하며 고집을 부렸고, 마침내 슈피처는 미 연방 국립의학도서관 프로젝트인 'Visible human Project(VHP)', 즉 인체의 실재를 단층촬영 하듯 미세하게 절단해 사진과 디지털 표본으로 만드는 작업에 그의 몸을 쓰기로 했다. 이미 기증받은 시신으로 1994년 남자의 몸과 1995년 여성의 몸을 VHP 데이터로 만든 터였지만, 기술적 한계로 여성의 경우 300미크론, 남성은 1,000미크론 두께로 절단해야 했다. 포터의 몸은 그보다 훨씬 미세한, 머리카락과 맞먹는 63미크론 두께의 약 2만7,000여 조각으로 슬라이스될 수 있었다. 포터는 흔쾌히 동의했다.

슈피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의학팀에 그 사실을 전하며 포터의 몸뿐 아니라 삶과 영혼까지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의대생들이 익명이 아닌 웃고 울고 고통받고 기뻐하던 한 사람의 몸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자고 청했다.

포터는 만 14년을 더 살고 2015년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 그 긴 기다림의 세월 동안 포터와 슈피처는 친구가 됐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단일 기획 최장 기간이 걸린 아이템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완성했다. 물론 슈피처는 포터와의 약속을 지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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