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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겨냥하면서도 잇속 챙기는 美 정치의 이중성

입력
2020.12.21 20:00
수정
2020.12.22 17:0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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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 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2년 전인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국방수권법에 서명한 뒤 뉴욕주에 있는 육군 제10 산악사단의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인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국방수권법에 서명한 뒤 뉴욕주에 있는 육군 제10 산악사단의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9ㆍ11 사태 하루 전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경고음을 울렸다. “이 적은 미국의 국방을 붕괴시키고 사람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린다. 우리의 적은 오히려 더 교활하고 잔인하다.” 그가 말한 적은 테러집단이 아니었다. 애국이란 이름으로 국방비를 낭비하는 국방 관련 집단이 바로 럼스펠드의 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국방개혁은 하루도 되지 않아 시작된 기나긴 테러와의 전쟁에 묻혀야 했다. 국가안보란 베일에 가려진 미국 국방비의 불편한 진실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군 출신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퇴임사에서 군산복합을 경고한 지 60년이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 단면을 살짝 들춰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면서 “새 국방법의 최대 승자는 중국”이라고 이유를 댄 것이다. 물론 소셜 플랫폼 업체의 콘텐츠 면책을 보장해준 통신품위법 230조의 폐지, 한국과 독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감축에 제동을 건 조항도 문제 삼고는 있다. 재미난 사실은 미 의회나 언론이 다른 이유들엔 주목하면서 ‘중국 승자’ 주장에는 침묵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슬쩍슬쩍 언급할 뿐이다. 백악관과 의회가 ‘중국’을 내놓고 얘기하지 못하고 신경전을 벌이는 데에 국방예산의 진실은 숨어 있다.

미국 국방비 및 GDP 대비 추세 /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국방비 및 GDP 대비 추세 /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년 미 국방예산을 7,405억달러로 정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은 미 노동자 실업예산 1,210억달러의 6배에 달하는 규모다. 매년 그렇지만 세계 10대 군사비 지출국가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과도 많거나 맞먹는다. 중국 국방비의 3배나 되는 이번 국방수권법에는 중국 관련 조항이 유독 많다. 언론들도 트럼프 행정부가 해온 어느 것보다 더 중국에 강경한 초당적 조항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국을 겨냥한 태평양억지구상(PDI)에 처음으로 22억달러를 배정한 것은 대표적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처음 제안된 PDI는 중국 억제를 위해 군사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동맹국 등과 안보협력을 확대해 미국 이익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국방수권법은 중국에 대한 산업적 견제도 연계시키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ZTE의 설비를 사용하는 국가에는 미국의 주요 무기체계나 추가 병력의 장기 배치를 재고하도록 했다. 행정부에겐 중국의 산업정보, 개인정보 절취를 막을 예산사용에 재량권을 부여했다. 미 정보당국도 내년 대중국 정보예산을 올해보다 20% 증액한 상태다. 상하 양원의 군사위원회는 법 통과 이후 낸 공동 설명서에서 “중국의 악의적 행동을 억제하고, 미국이 전략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다양한 조항을 담고 있다”며 ‘중국 견제’를 강조했다.

중국이란 적이 부상하면서 미 국방비에서 무기 프로그램 확대는 어느 때보다 좋은 명분을 만났다. 과거 테러와의 전쟁 때는 약한 명분 때문에 예산낭비 문제로 시끄러웠다. 테러집단 공격을 위해 구소련 방공망을 뚫고 침투하도록 개발된 B-2스텔스 폭격기가 동원되고, 수십억 달러 하는 핵잠수함이 추가 건조되었다. 하지만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중국에 군사력 우위를 빼앗긴다는 논리 앞에 반론을 제기하긴 어렵다. 이번에 의회가 대중국 억제력 강화를 이유로 30억달러가 넘는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을 군이 원한 것보다 1척 더 건조하도록 예산을 준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국 사안도 로비에는 흔들린다. 중국산 드론 규제의 실패는 상징적이다. 앞서 미국 시장의 80%를 장악한 중국산 드론의 조정 앱이 사용자, 영상 정보 등을 중국 개발자에게 보내도록 코딩된 사실이 공개됐다. 그러자 국방부와 국토안보부는 중국산 드론의 사용에 경고를 내렸고, 하원은 사실상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을 국방수권법안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 조항은 상원이 수정을 시도되더니 나중에는 하원이 원문을 철회, 최종안에서 슬그머니 삭제됐다. 중국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발신한 것에 대해 의회보고서는 이미 국방부에서 외국산 무인기 축소 조치가 취해졌다는 핑계를 댔다. 미 헤리티지 재단의 존 베너블 선임연구원은 언론 기고문에서 “중국의 로비가 조항을 삭제시켰다”며 “중국 로비를 받은 의원이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국방비 지출 상위 10개국

국방비 지출 상위 10개국

중국산 드론에서 보듯 국방수권법은 미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방부가 요청하지 않은 무기 시스템이 의회 결정으로 예산이 배정되는 터무니 없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한미군에도 배치된 미 공군의 천덕꾸러기 A-10은 공격헬기가 없던 냉전시절 공격 전용기로 개발돼 ‘탱크 킬러’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대공포에 취약해 전술적 제약이 많고 대체 기종까지 나와 미 공군은 지난 10년 동안 퇴역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도 공군은 44대를 먼저 퇴역시키고 237대를 운용하는 중재안을 냈으나 의회는 퇴역 예산에는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했다. 육군의 경우 베트남전 때 개발된 CH-47 치누크 헬기를 개선하기보다 다른 기종 개발에 예산을 투입하길 원하지만 의회의 생각은 다르다. 의회는 CH-47 예산을 육군 요구액의 2배로 올려주고 구입대수도 5대 추가해줬다.

국방비 지출과 국가안보가 과연 상관성이 있을지 되묻게 하는 이런 조치들은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나 군수업체 로비의 결과이다. 군사장비 생산라인이나 기지가 폐쇄되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선거자금도 그만큼 줄어든다. A-10 공격기의 경우 상원 군사위에서 오래 활동했던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주 기지에 상당수가 배치되어 있다. 노스다코타주 출신 의원들은 이번 국방수권법에서 무인항공기 MQ-9의 16대 구매를 성사시켜 생산라인 폐쇄를 막은 것을 의정성과로 공개했다. 오하이오주 출신 의원들도 지역구 군수업체들이 이득을 얻도록 지원한 사실을 공개하고, 오하이오가 최고의 국방시설 지역임을 자랑했다.

F-35 통합타격기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이 생산시설을 40개 가까운 주에 걸쳐 놓은 것도 한편으로 의원들의 지지를 받기 쉬운 이유다. 실제로 의회는 F-35 구매예산으로 트럼프 정부가 요구한 것보다 14대 많은 93대 분량의 91억달러를 승인했다. 증액 경쟁이라도 하듯 하원은 12대를, 상원은 17대를 더 구매토록 압박하다 결국 14대로 합의한 뒤 공군에 6대의 구매 재량권을 부여했다.

이번 국방수권법에는 첫 공식 프로그램인 미확인비행물체(UFO) TF를 운용해 UFO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판단토록 하는 등 흥미로운 내용도 많다. 공식 명칭이 ‘가디언즈’로 정해진 우주군은 공군 소속 우주사령부에서 통합사령부로 확대 개편해, 고도 100km 이상의 우주공간에서 각종 군사활동 및 작전을 수행토록 했다. 트럼프 정부를 견제하는 조항들도 법에 다수 포함돼 있다. 독일 한국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의 감축에 예산을 쓰지 못하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비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종식시킬 미군철수 카드를 의회가 나서 무력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4,000개가 넘는 국방수권법 조항에는 누군가에게 파멸과 죽음을 뜻하는 국방비를 지역구 일자리 사업쯤으로 여기는 미국 정치의 실상이 숨겨져 있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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