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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10만개 일본, 원하면 끊고 새로 맺을 수도 있다?

입력
2020.12.23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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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본인에게 ‘성씨’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성씨나 호칭이 한자 문화권에서 파생되었지만, 이 제도를 해석하고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성씨가 혈통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의 성씨는 계약적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수단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일본 모두 성씨나 호칭이 한자 문화권에서 파생되었지만, 이 제도를 해석하고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성씨가 혈통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의 성씨는 계약적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수단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호칭 문화

일본에서 산 지 쏠쏠히 오래 된 지금도 ‘김상~’이라고 불리는 것이 영 낯설다. 일본에서는 우리말로 ‘~씨’에 해당하는 ‘~상 (さん)’ 이라는 접미사를 성에 붙여 호칭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성과 이름을 함께 ‘풀 네임’을 부르는 방식과 대조적이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가 맞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김씨가 흔하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김상~’이라는 호칭이 나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적도 종종 있고, 이런 호칭에 응답하는 내 자신이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김씨’라는 성씨에서 찾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런 내 사정을 잘 아는 친한 일본인 친구들은 와 닿지 않는 ‘김상~’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으로 친근하게 불러준다.

‘김상’이라는 호칭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김씨’인데, 이 어감도 썩 좋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성씨로 사람을 특정할 때에는 ‘김 대리’나 ‘박 선배’, ‘이 여사’ 등 사회적 직급이나 지위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씨’라는 호칭은 상대방을 낮추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손윗사람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눈 앞의 상대를 ‘김씨’라고 부를 작정이라면 분위기가 험악하게 전개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보다 더 난감한 것은 같은 학교, 같은 회사의 김씨만 나와 보라고 해도 십 수명은 어렵지 않게 넘어갈 판이라는 사실이다. 김씨 뿐 아니라 한국에는 같은 성씨가 많기 때문에, 성씨만 갖고 누가 누구인지 분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성씨가 많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수강생 100명이 넘는 대규모 수업의 출석부에 성씨가 동일한 학생이 한두 명 있을까 말까다. 이러니 성씨로 호칭을 대신해도 한국에서와 같은 대혼란이 생길 리가 없다. 많은 일본인이 타인과 좀처럼 중복되지 않는 자신의 성씨를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예의를 차리는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친한 지인이나 동료,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씨로 서로를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편, 한국의 ‘~씨’ 라는 호칭이 손윗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 ‘~상’이라는 호칭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상대를 예의 바르게 부를 수 있는 무난한 어법이다. 친근한 사이에서는 남자는 ‘~군(君)’, 여자는 ‘~짱(ちゃん)’이라는 허물없는 호칭이 쓰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이라는 대등하고 범용성이 있는 호칭이 꽤 마음에 든다. 가끔 인사를 나누는 이웃은 ‘모리모토 상’,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는 ‘다나카 상’, 이번에 환갑을 맞은 대학원 선배는 ‘후루카와 상’, 심지어는, 어른스러운 사회 관계에 하루빨리 익숙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제자들에게도 ‘~상’이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

◇ 한국의 성씨는 속인주의, 일본의 성씨는 속지주의

일본의 성씨는 무려 10만개에 달한다. 희귀한 성씨를 제외해도 1만개의 성씨가 실제로 사용된다고 하니, 기껏해야 300개 정도의 성씨가 존재하는 한국과는 엄청난 차이다. ‘김’, ‘이’, ‘박’ 등 한자 한 글자인 한국의 성씨와는 달리 일본은 한자가 몇 글자씩 어우러져 하나의 성씨를 이룬다. 일본에서 제일 흔한 성씨라는 ‘사토’는 한자로 ‘佐藤’ 라고 쓰는데, 이런 식으로 한 글자에서 서너 글자까지 한자를 조합된 성씨가 수만 개가 훌쩍 넘는다. 일본어로 성씨는 ‘묘지(苗字, 혹은 名字라고도 쓴다)’ 라고도 부르는데, 엄밀하게 따지자면 일본의 ‘묘지’는 한국의 성씨와는 다른 개념이다. 복잡한 역사적 경위는 생략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성씨는 씨족과 혈연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개념인 반면, 일본의 성씨(‘묘지’)는 조상이 거주하던 지역이나 지형, 생활 양식 등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개념이다. 많은 일본의 성씨가 지명이나 동네의 이름, 혹은 지역의 특징적인 지형을 그대로 답습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흔한 성씨 중의 하나인 ‘다나카 (田中)’는 ‘밭 가운데’ 라는 뜻이다. 이 성씨의 선조는 농경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역시 자주 접하는 성씨인 ‘야마모토 (山本)’는 ‘산기슭’ 라는 의미다. 아마도 선조가 산 언저리에 살았으리라 추측해 본다. 김씨 중에서도 김해 지방에 자리를 잡았으면 ‘김해 김씨’, 경주가 본거지라면 ‘경주 김씨’라는 식으로, 한국에도 성씨가 가지치기를 해서 지역이라는 정체성이 덧붙여진 본관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본의 성씨는 개념적으로는 본관에 오히려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성씨가 씨족과 혈통의 계보를 강조하는 속인주의 사고방식을 따른다면, 일본의 성씨는 고향이나 거주지의 특성 등 지역적 맥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속지주의 사고방식에 근거한다. 씨족의 계보를 중시하는 속인주의 전통에서 보면 성씨는 개인에게 주어진 본질이자 숙명이다. 혈연을 멋대로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반면, 속지주의 전통에서 보면 성씨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는 대상이다. 혈연 관계를 곧이곧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끊을 수도 있고 새로이 맺을 수도 있는 상대적인 가족 개념이다. 한번은 일본인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문패에 생판 다른 성씨가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친구는 양친의 동의 하에 어렸을 때에 조모의 성씨를 물려받아, 부모 형제들과는 다른 성씨로 살아왔던 모양이었다. 끈끈한 혈통을 강조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불가해한 사고 방식이지만, 일본에서는 동일한 혈연이 곧 같은 성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사고 방식의 연장선에서 기업이나 가업을 계승하는 등 사회적 인연의 상징으로서 성씨를 주고 받는 계약적 관행도 뿌리내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매년 8만명이 양자의 인연을 맺고 성씨를 바꾸는데 대다수가 성인 남자다. 첫째 아들이 가업을 계승한다는 과거의 고정 관념이 아직 굳건하다 보니 양자 제도를 통해 남성 후계자를 가족으로 들이는 일이 적지 않다. ‘기업의 계승자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에 쓴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일본에서 성씨를 이어받는다는 것은 가업을 계승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고, 한편으로는 그런 의지를 사회적 약속으로 공식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성씨와 비교하자면 일본의 성씨는 훨씬 더 ‘엉덩이’가 가벼운 개념이라는 점이다.

◇ 일상 속에 감추어진 사고 방식의 차이

한국과 일본의 성씨나 호칭은 역사적으로는 동일한 한자 문화권에서 파생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이 제도를 해석하고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한국의 성씨가 혈통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성씨는 계약적 사회 관계를 구성하는 수단이다. 한국에서 성씨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존재론적 정체성으로 해석되는 데에 반해, 일본에서 성씨는 호칭을 통해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일상적인 정체성으로 활용된다. 사고 방식의 차이가 매우 뚜렷하고 대조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호칭이나 성씨 제도의 표면적인 측면만 보아서는 이런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쉽게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개 김’이 아니라 ‘김 아무개’라는 식으로 성씨를 이름 앞에 쓰는 표기법이며,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점 서양의 호칭 문화와는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문화를 탐구하는 묘미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속내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 앞으로도 ‘김상~’이라는 호칭에는 익숙해질 것 같지 않지만, 일상 생활의 자연스러움 뒤에 실체를 숨기고 있는 ‘문화’ 라는 대상에 대한 탐구심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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