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를 아시나요

입력
2020.12.21 15:00
수정
2020.12.22 10:18
18면
0 0

이진국 보다비 대표, 국내 최초 AI로 통화 분석해 영업 성공시키는 앱 개발,
“제일 무서운 것은 고객의 침묵, 차라리 욕하는 고객이 낫다”

기존 산업 형태가 디지털로 급격히 전환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해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라는 신사업이다.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는 기업의 영업 성공률을 높이는 소프트웨어다.

지금까지 기업의 판매 활동은 광고를 하거나 직원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 또는 방문해 제품을 파는 전통적인 방법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 경우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불거졌다. 무조건 찾아가서 만나거나 전화한다고 모두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파는 것이다.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누구에게 전화하면 판매 성공률이 높은지 알려준다. 따라서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바로 연락해 판매율을 늘리는 것이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덕분에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미국 유럽 등에서는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가 기업의 핵심 솔루션으로 떠오르면서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를 개발한 공(Gong)이라는 솔루션업체가 1,600억원을 투자 받았다.

국내에 전무한 이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이진국(50) 보다비 대표는 지난 1월 회사를 설립해 AI를 이용한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 ‘보다비’를 개발했다. 보다비는 비즈니스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이진국 보다비 대표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인 '보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진국 보다비 대표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세일즈코칭 소프트웨어인 '보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종합상사맨’의 스타트업 도전

원래 이 대표는 무역, 즉 해외 영업의 상징 같은 대기업 종합상사 출신이다. 그는 1997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해 3년 동안 해외 영업을 했다. 이후 벤처붐이 일던 1999년 인터파크로 옮겼고 다시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 시스코코리아에서 영업총괄(인사이드 세일즈 매니저)을 맡게 됐다. 이것이 인연이 돼 2009년 기업 간 거래(B2B)를 전문으로 한 미국의 마켓스타 한국지사장까지 역임했다.

이 대표는 2011년 마켓스타가 국내에서 철수하자 이를 대신할 JKL컴퍼니를 설립했다. “B2B 개념도 생소하던 시절에 마켓스타의 경험을 발판 삼아 기업들의 고객을 발굴해주는 회사를 창업했죠.”

마이크로소프트(MS), HP 등 세계적 IT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한 국내 기업들을 발굴해 고객으로 연결해 주는 회사였다. 종합상사 시절부터 마켓스타를 거치며 갈고 닦은 영업 비결 덕분에 회사는 호황을 맞았다. 지금도 JKL컴퍼니 대표를 겸하는 이 대표는 여기서 보다비 개발의 힌트를 얻었다. “JKL컴퍼니는 고객 발굴을 위해 연간 10만통의 전화를 합니다. 이를 분석해 보니 구매 의사가 있는 사람은 공통 요소가 있어요. 공통 요소를 자동으로 분석해주면 판매 성공률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 대표는 2019년에 카이스트 출신의 AI와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영입해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음성 통화를 분석해 판매 성공으로 이어지는 공통 요소를 찾아내는 기술이다. 기업들에게 필요하지만 국내에 전무한 이 기술은 그 해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혁신과제에 선정돼 지원을 받았다.

이때 스타트업 탄생으로 이어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이 대표가 개발하는 기술을 눈여겨 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2019년에 먼저 ETRI 산하의 연구소 기업 설립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이듬해 ETRI로부터 음성을 문자로 전환(STT)하는 기술을 이전받고 ETRI가 100% 출자한 ETRI홀딩스에서 투자를 받았다. “ETRI는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의 시장성이 크다고 봤어요. 특히 비즈니스 대화만 분석하는 전문화된 특허 기술을 높이 평가했죠.”

보다비 시스템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통화 내용을 AI가 분석해 영업 성공률을 그래프로 보여준다. 보다비 제공

보다비 시스템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통화 내용을 AI가 분석해 영업 성공률을 그래프로 보여준다. 보다비 제공


AI가 앞뒤 문맥 분석해 통화 상대의 의미를 파악

이 대표가 ‘대화분석 솔루션’이라고 부르는 보다비에 적용된 특허 기술의 원리는 간단했다. 이 대표가 ‘BANTCQ’라고 명명한 돈(예산), 일정, 권한, 요구, 경쟁력, 기한 등 6가지 요소가 대화 속에서 얼마나 나오는지 분석해 점수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화를 계량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점수가 높으면 다음 통화 때 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죠.”

이렇게 되면 점수가 높은 대화 상대 순으로 재차 전화를 걸어 영업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가 꼭 필요한 사람은 가격을 묻고, 언제까지 공급 가능한지, 이를 사용하는 경쟁기업이 있는지 등을 꼭 확인하죠. AI가 이를 분석하는 겁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기술 구현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의 말이 갖고 있는 의미가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의 괜찮다는 말이 좋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의미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보다비는 앞뒤 문맥을 살펴서 이를 분석해 주죠.”

이 대표는 이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용 ‘보다비’ 소프트웨어(앱)의 시험판을 10월에 내놓고 많은 이용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해봤다. “놓칠 뻔한 주문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사용해 보니 무서울 정도로 분석이 정확했다는 반응이 많아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용법은 간단하다. 앱을 내려받아 스마트폰에 설치한 뒤 회원 가입을 하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구글의 앱 장터인 ‘구글 플레이’가 아닌 SK텔레콤과 네이버가 만든 앱 장터 ‘원스토어’에서만 내려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구글이 자체 결제 수단만 거치도록 하면서 앱 개발업체에서 30% 수수료를 가져가는 정책을 강제해 구글 플레이에 올리지 않았어요.”

보다비 앱을 설치하면 자동으로 통화가 녹음된다. 이렇게 녹음된 파일을 ‘전송하기’ 버튼을 눌러서 보다비의 서버로 전송하면 AI가 대화 분석을 한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자동 전송 기능을 일부러 넣지 않았어요. 폰에 저장된 대화 내용을 이용자가 골라서 보낼 수 있도록 했죠. 필요없는 개인 통화 녹음은 바로 삭제할 수 있어요.”

보다비 앱은 대화 분석 외에 비서 기능도 있다. “AI가 영업 성공률이 높을 것 같은 특정인에게 다시 전화해 보라고 자동 추천을 해줍니다. 중요한 통화 상대는 따로 분류해서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안드로이드폰만 지원한다. 아이폰용 앱은 이달 중 개발을 마칠 예정이다. “아이폰 앱까지 나오면 내년 3월 중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용료는 개인에게 월 1만원, 기업에게는 이용 직원 1인당 월 2만원씩 받을 예정이다.

특히 기업에게는 결과물이 다른 분석을 제공할 예정이다. “영업사원별로 분석을 해줍니다. 누가 더 성공률이 높은지 점수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원별로 성과 측정이 가능하죠.”

이진국 보다비 대표가 내년에 미국 시장 공략 등 해외 서비스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진국 보다비 대표가 내년에 미국 시장 공략 등 해외 서비스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제일 무서운 것은 고객의 침묵, 차라리 욕하는 고객이 낫다”

이 대표는 종합상사와 외국계 기업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언어’라는 책도 낸 비즈니스 분석 전문가다. 그는 “고객이 쓰는 언어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영업사원들은 기대심리 때문에 듣고 싶은 말만 들어요. 정작 중요한 것은 대화 속에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에요. 이를 위해 상대의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이 대표는 영업사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직관을 꼽았다. “흔히 영업사원들은 직관에 속아요. 느낌을 믿는 것이죠. 예를 들어 상대가 만나자 마자 웃었고 악수까지 해서 느낌이 좋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직관에 속아 정작 계약할 의사가 있는지, 예산은 얼마나 갖고 있는지, 다음에 만날 약속을 했는지 중요한 사항들을 놓치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이 대표는 2대 8 법칙을 주장한다. 대화 내용 중 고객이 20%를 얘기하면 실패, 80% 이상 얘기하면 영업이 성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업 사원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고객의 침묵입니다. 고객이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특히 질문을 많이 하게 만들어야죠. 상대가 관심이 없으면 질문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합니다. 차라리 욕하는 고객이 낫습니다. 욕 속에 새겨 들어야 할 부분이 있거든요. 1년 무상 서비스라고 해놓고 왜 제대로 서비스 하지 않느냐는 항의를 잘 들어보면 무엇을 신경 써야 할 지 보이죠.”

이 대표는 이런 경험을 녹인 보다비를 해외에도 적극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에 영어판도 개발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기업들이 되도록 대면 영업을 줄이는 상황이어서 보다비에 관심 갖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몇 가지 추가 개발을 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좀 더 사용하기 쉽도록 이용자 환경(UI)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통화 속에 공급량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면 이를 수치로 표시해주는 기능 등을 넣을 생각입니다. 시험판 사용 인원도 대폭 늘려서 기능 개선을 꾸준히 해야죠. 이를 위해 추가 투자를 받으려고 투자사들도 적극 만나고 있습니다.”

아예 영업에 특화된 스마트폰 개발도 검토 중이다. “스마트폰에 보다비를 기본 탑재해서 판매하는 방안도 생각 중입니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협력해 기업용 폰으로 내놓을 수 있죠.”

무엇보다 대기업들이 적극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 대기업은 그룹 전체에서 도입해 각 계열사마다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벤처투자업체의 소개로 해외 기업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어요. 그만큼 내년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까지 노려보겠습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