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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적임자라던 추미애와 윤석열 '사법의 정치화' 파국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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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적임자라던 추미애와 윤석열 '사법의 정치화' 파국 불렀다

입력
2020.12.18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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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검찰 갈등 왜 이 지경까지>
윤석열의 측근 챙기기 인사가 단초
추미애는 인사 정상화 명목 코드 인사
잇딴 지휘권 발동에 개별사건 언급 논란
'추미애 입' 검찰 수사가 정쟁 소용돌이로

추미애(왼쪽 사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6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검찰청으로 각각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왼쪽 사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6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검찰청으로 각각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와 검찰은 물론,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끊임없는 대립 과정을 지켜본 법조계 인사들이 한결같이 내뱉은 말이다. 소모적 갈등에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는 이제 명확히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며 임명했던 두 사람이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다는 점에선 이견이 별로 없다.

1년 가까이 이어진 갈등은 일단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다. 징계 처분 관련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윤 총장은 ‘정직 2개월’ 상태에 들어갔고 추 장관은 이미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법무부와 검찰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추미애 장관 - 윤석열 총장 갈등이 남긴 상처. 그래픽=강준구 기자

추미애 장관 - 윤석열 총장 갈등이 남긴 상처. 그래픽=강준구 기자


尹·秋 '코드 인사'에 법무·검찰 사분오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윤 총장 임명 이후’만 따지면, 가장 많이 꼽히는 건 지난해 7~8월 검찰 인사다. 작년 7월 25일 윤 총장 취임 직후 단행된 인사에서 ‘특별수사통’ 검사들이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에 대거 배치됐다. 사실상 윤 총장의 ‘뜻’이 거의 100% 반영됐다는 게 정설이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연속 발탁한 것만큼,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과한 ‘측근 챙기기’로 검찰 안에서도 윤 총장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미 당시에 검찰 내부 분열의 싹이 텄다는 뜻이다.

때문에 올해 1월 2일 추 장관 취임 직후 이뤄진 두 차례의 검찰 인사는 ‘윤석열 라인 학살’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나왔지만, 반대로 ‘윤석열 라인’만 중용된 인사를 정상화한다는 명분도 충분했다. 그러나 윤 총장과의 협의를 사실상 건너뛰면서, 마찬가지로 ‘코드 인사’라는 지적을 피할 순 없었다. 그리고 유례 없는 내부 반목이 시작됐다. ‘상갓집 항명 파동’ ‘검언유착’ 의혹 수사 과정의 잡음 등에서 보듯,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또는 한 기관 내에서조차 시시각각 갈등이 불거졌고 외부에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검사는 “사건 처리에 대한 이견 발생은 정상적인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내부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일일이 외부에 중계방송 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폭로만 있었을 뿐, 합리적인 의견 조율 과정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내부 소통 단절’은 윤 총장 징계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법무부도 다를 게 없다.

특히 법무부와 대검의 관계는 ‘마비’ 상태에 빠졌다. 검찰 내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ㆍ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핵심 과제를 놓고 추 장관은 물론, 윤 총장도 손을 놓아버렸다”는 불만이 심심찮게 나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장관 수사지휘권 남발… '최대한 절제' 원칙 붕괴

소통 단절은 원칙 붕괴로 이어졌다. 추 장관은 △올해 7월 ‘검언유착’ 의혹 사건 △10월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및 윤 총장 가족ㆍ측근 사건 등 5건에 대해 잇따라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윤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역대 7건 중 6건 발동’이라는 기록이 3개월여 만에 세워졌다.

물론, 공식적인 지휘권 행사 사례만으로 평가하는 건 무리다. 과거 ‘밀실’에서 이뤄진 수사 지휘는 훨씬 많다. 2013년 윤 총장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을 때,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고 압박했던 게 대표적이다. 추 장관의 조치를 두고 “밀실 수사지휘를 양지로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는 일부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절차와 내용을 보면,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은 최대한 절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붕괴시켰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균형과 견제를 위해 법상 권한을 두는 것과 이를 실제 행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물밑 설득과 조율 과정을 무시한 채 장관과 총장이 서로의 영역을 직접 침범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구체적 사건 일일이 거론… '수사의 정치화' 심화

그 결과, 법률적 기준으로만 판단돼야 할 형사 사건들이 노골적으로 정치화하고 말았다. 사건에 정치색(色)이 덧입혀졌다는 의미인데, 이와 관련해선 ‘절제미’를 보이지 못한 윤 총장의 스타일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으나 ‘추 장관의 입’에 좀 더 큰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추 장관은 검언유착 의혹은 물론,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라임 사건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에서 자신의 의중을 계속 내비쳤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과 관련한 사건(군 시절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에 특정 결론을 주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사건이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검찰 수사결과를 인정하기보다는 어느 한쪽에선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제도적 문제 해결을 책임져야 할 장관이 임기 내내 구체적 사건에 관심을 보이면서 ‘검찰 신뢰 회복’이라는 목표는 저버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차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유발한 상처는 결국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며 “향후 새로운 장관과 총장을 중심으로 합리적 의사소통을 회복하고, 그간 미비했던 제도 정비에 집중하는 게 사태 수습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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