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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낙엽

입력
2020.12.17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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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숲길에 가면 낙엽 위를 걷는 촉감이 너무 좋다. 매일 포장된 아스팔트 길과 콘크리트 건물 바닥을 걷던 발이 부드러운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호사를 누린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한적한 길 하나 정도는 쌓인 낙엽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좋겠지만, 매일 청소하시는 분들의 노고로 언제나 깨끗하다. 요즘은 낙엽을 치우는 일도 기계로 바람을 일으켜 청소를 하기에 빗자루로 낙엽을 쓰는 정겨운 모습도 보기 힘들다.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고마움이 있지만 기계를 작동하는 소음과 기름 냄새가 불편하기도 하다.

추풍낙엽(秋風落葉). 어떤 일의 무상함이나 허무함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되지만 낙엽의 역할을 살펴보면 그런 뜻과는 거리가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 낙엽들은 녹색 잎으로 나뭇가지에 붙어 온 힘을 다해 일했다. 나무뿌리로 부터 수분을 끌어올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광합성’이라는 공장을 가동해서 나무를 키우고 또 이 세상에는 산소를 공급했다. 이뿐이 아니다. 잎은 우리 인간에게도 유익한 먹거리와 의약품의 원료가 되어준다. 다양한 종류의 차들은 대부분 나뭇잎을 가공해서 상품화되고, 은행잎은 혈액 순환 개선제를, 주목의 잎에서는 ‘택솔’이란 암치료제 원료를 추출한다.

계절이 바뀌어 낮이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스스로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형성시켜 낙엽이 된다.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고도의 연출이 빚어낸 정밀한 작업이다. 먼저 녹색의 엽록소가 잎자루와 가지 사이의 좁은 통로로 이동을 한다. 그러면 잎은 녹색을 버리고 고유의 색으로 변신을 한다. 그러다가 떨켜층을 형성한 이파리는 자신의 무게만으로도 꺾여서 가지에서 떨어진다. 나무 한 그루가 1년 내내 간직했던 나뭇잎을 모두 떨구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추워지는 날씨에도 한여름같이 잎이 가지에 붙어 있으면 나무는 뿌리에서 수분을 공급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되겠는가. 낙엽은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기에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떨어뜨리는 지혜를 발휘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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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되기 전 잎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나타낸다. 나뭇잎에 단풍이 드는 이유도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원래 봄, 여름에는 나뭇잎에 엽록소가 많아 녹색을 띠지만 가을이 되면 나뭇잎에서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남아 있는 붉은색, 노란색 색소가 도드라지게 된다. 엽록소는 햇빛을 이용해 나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만드는 기능을 하는데 추위에 민감하다. 기온이 낮아지면 엽록소 생산이 중단되고, 이 때문에 나뭇잎은 초록색이 사라지고 대신 여러 색의 단풍이 든다. 젊었을 때 녹색의 열정으로 열심히 일하고 나이 들어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드러내서 온 산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나뭇잎을 보며 나이 듦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또한 요즘같이 모두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우리에게 낙엽은 몸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깨닫게 한다.

오늘 숲길에서 내가 밟은 낙엽은 이제 훗날 자기 몸을 썩혀 비옥한 흙으로 변신할 것이다. 땅에 떨어져 사라져 가면서도 후세의 숲에 거름이 되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우리는 낙엽에서 볼 수 있다. 이제 따듯한 봄이 되면 이 낙엽이 준 땅의 비옥함으로 커온 나무는 가지에서 다시 새잎을 내밀 것이다. 그렇게 낙엽의 부활이 시작될 봄을 나는 기다린다.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ㆍ전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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