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치러진 미국 대선은 조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다. 4년 전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러스트벨트의 ‘변심’이 결정적이었다. 제조업 쇠퇴로 무너진 미국 노동자들의 좌절과 상실을 대변했던 러스트벨트. 트럼프는 그들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지만, 이번엔 외면당했다. 경제적 여건이 딱히 달라진 게 없는데도 그랬다.
“’몰락’을 러스트벨트의 정체성으로 유일하게 규정한 건 트럼프의 착각이었다. 러스트벨트는 쇠락했을지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는 끈끈한 연대와 희망을 간직한 공간이었다. 분노와 혐오, 적대감은 그들의 정체성이 아녔다.”
러스트벨트에서 여성 철강 노동자로 3년 넘게 근무한, 1986년생 저자는 확신에 차 말한다. 책은 제철소에서 강철처럼 단련된 밀레니얼 세대의 성장 스토리다. 그간 러스트벨트 노동자 얘기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화자가 여성이란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처음부터 제철소 노동자를 꿈꿨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바라본 제철소는 녹슨 건물에 악취가 가득한, 낡은 과거의 시대가 남긴 을씨년스러운 '배경'에 불과했다. 부유한 가정은 아녔지만,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교수의 꿈도 품었다. 하지만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밀레니얼 세대의 삶은 부모 세대보다 더 퍽퍽했고, 조금씩 뒤쳐졌다. 거듭된 취업 실패에 학자금 대출 빚은 쌓여만 가는 암담한 현실. 동물 사체가 출몰하는 자취방을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학위 취득을 포기하고 페인트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30살, 제철소 신입 ‘주황모자(수습 노동자를 칭하는 말)'가 됐다.
남성 중심인 제철소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다치는 것은 예사,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작업 환경에 만연한 성차별까지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녔다. 제철소의 노동자들은 나보다 동료를 먼저 보살폈고, 먼저 떠난 동료를 위한 추모는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공감과 위로도 넘쳐났다. 대학 시절 겪은 성폭력과 양극성 기분 장애 때문에 힘들어하던 저자는 동료들의 응원 속에서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결국 제철소에서 그가 배운 건, 각자도생의 방식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미국적 열정”으로 노력했지만 “개인주의의 유독성에 눈을 감았던” 밀레니얼 세대는, 제철소에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제2의 출발에 나선다. 정직하고 신성한 노동의 힘, 세대와 성별, 정치적 성향을 넘어선 평범한 이들의 연대. 트럼프 신봉자로만 알려졌던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은 정치권이 맘대로 딱지 붙여 놓은 '몰락'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변화를 택했다. 삶의 방향타를 잃고 아파하던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를 세계와 다시 연결시키고 나아가게 한 힘에서, 러스트벨트의 도약은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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