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나도 저런 집에서 한번 살아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0.1% 최상류층이 모여 사는 100층짜리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헤라팰리스는 오윤희(유진)에겐 선망의 대상. 이 꿈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에서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오윤희를 돕고 있는 최고층 펜트하우스의 안주인 심수련(이지아)은 그의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지금은 45층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 돈 더 많이 벌어서 천서진(김소연)이 사는 85층까지 올라가 봐."
'막장 드라마의 대모' 김순옥 작가가 대본을 쓰고, 주동민 PD가 연출한 '펜트하우스'의 시청률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방송에서 마의 20%를 돌파하더니 천서진이 죽어가는 아버지를 내팽개치는 패륜을 저지른 15일 방송은 23.3%를 찍었다. 납치, 감금, 살인, 시체 유기,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로도 모자라 패륜까지 뒤범벅된 막장 드라마가 거센 비판에도 되레 시청률이 오르는 이 기현상. 너와 나의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 '펜트하우스'를 보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인간의 욕망도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끝없이 오르려 하기 때문이다." 당초 밝힌 기획의도처럼 '펜트하우스'는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우리네 욕망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집도 절도 없던 오윤희가 헤라팰리스에 들어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심수련이 복수의 과정에서 닥치는 난관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마다 속이 시원해진다. 악당은 결국 죗값을 받는다는 걸 시청자는 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부동산과 교육이라는 공분을 자극하는 소재를 깔아놓고 종국에는 성공과 복수를 통해 뒤집는 구조"라며 "현실에서 불가능한 판타지를 던져주기 때문에 계속 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펜트하우스'에 쏟아지는 막장이라는 지적에 으레 "현실과 드라마, 누가 더 막장인가"라는 물음이 따라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이 고단할수록 판타지는 더 힘을 발휘하는 법. 희망과 기대가 사라진 대중은 '펜트하우스'를 보면서 대리만족한다.
드라마 자체가 가진 힘도 무시 못 한다. '펜트하우스'는 '막장의 정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불륜과 배신, 복수라는 '막장 드라마 3종 세트'는 진즉 갖췄다. 숨쉴 틈 없는 엄청난 속도의 전개, 뒤통수를 치는 역대급 서스펜스, 예측 불가한 반전이 매회 몰아친다. 막장 요소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극단적인 설정은 더 큰 카타르시스를 안기고, 시청자는 속수무책이다. 욕하면서 보고 있고, 자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당신은 이미 '펜트하우스'에 중독된 것.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아울러 김순옥 작가의 악녀 캐릭터 계보를 이을 만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김소연을 비롯해 엄기준, 이지아, 유진, 신은경 등의 탄탄한 연기는 다소 황당한 전개에도 강력한 흡인력을 선사한다.
6회 방송을 남겨둔 '펜트하우스'는 12부작씩 편성된 시즌2와 3를 내년에 또 선보인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2000년대 후반 '아내의 유혹'을 시작으로 몇년간 막장 드라마가 인기였던 건 우리 사회 모습을 밀도있게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실에서 더 막장 같은 일이 일어나면서 막장 드라마도 잠시 시들해졌는데 '펜트하우스'는 막장 드라마를 다시 일으켜세우려면 '더 세게' 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순옥표 '더 세게' 전략은 정확하게 먹혀 들었다. '펜트하우스'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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