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멀리서 접하는 한국 뉴스에 공정성에 대한 기사가 유난히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회학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특히 그런 기사가 눈에 띄었겠지만, 공정성이 한국 사회의 화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자료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특히 노력과 성공의 관계에 대한 설문 결과들이 흥미롭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나라에서 실시해 온 '세계가치관조사'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2018년 조사에서 한국인의 30%만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는 조사에 참여한 50여개국 중 네 번째로 낮은 수치다. 또 2019년 퓨리서치센터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인생의 성공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한국인의 76%가 그렇다고 했다. 조사에 참여한 34개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한국인들이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 다른 최근 조사에서 대다수 한국인이 연줄, 배경, 운이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특히 많은 사람이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한국인이 노력과 성공의 관계에 대해 언제나 이런 비관적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다시 '세계가치관조사'를 보면, 1990년에는 75%에 가까운 한국인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지난 30년간 이런 태도는 점점 비관적으로 바뀌었고, 특히 지난 10여년간 크게 변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인들은 노력과 성공의 관계에 대해 훨씬 낙관적이다. '세계가치관조사'의 같은 문항에 대해 대다수 미국인들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비율도 지난 30여년 거의 변함이 없다. 인생의 성공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좌우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30%만 그렇다고 답했는데, 34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적어도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으로 남아 있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이런 대조적 태도가 객관적 지표로 나타나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사회의 부와 소득 불평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최근 많은 연구에서 미국의 세대 간 계층 이동 기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나 미국인들의 믿음과 현실의 큰 격차를 보여 준다. 반면 국내외 사회학자들의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기회가 줄거나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한국의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것도 아니다.
객관적 지표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도 노력과 성공의 함수에 대한 이런 태도는 엄연한 사회적 사실로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최근 저서에서 성공을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만 돌리는 능력주의적 태도가 가진 자의 오만과 가지지 못한 자의 굴욕감을 가져와 사회적 연대를 어렵게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미국인들은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 유난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의 노력과 성공의 관계에 대한 비관적 태도가 넓은 사회적 연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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