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열린 2020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지도자상을 받은 세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은 퓨처스 감독으로 돌아간 최원호(47) 전 한화 감독대행이었다. 꼴찌팀 감독이 상을 받은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그가 이뤄낸 가시적인 성과를 방증하는 상이었다.
지난 6월 한용덕 감독이 도중 하차하면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떠안은 그는 임시 사령탑 최장인 114경기를 지휘하면서 승률 0.351(39승 3무 72패)를 기록, 2할대 승률(0.236)에서 허덕이던 팀을 추스르고 각종 불명예 기록을 피하면서 구단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최 감독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현재보다 미래 가치에 투자했다. 그 결과 올해 데뷔한 투수 강재민은 50경기에서 1승2패 1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2.57을, 지난해까지 1군 등판이 전무했던 윤대경은 55경기 5승 7홀드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하는 등 우수 선수 발굴에 성공했다.
최 감독은 KBO리그 1호 '박사 사령탑'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현대와 LG에서 14년 간 주축 투수로 활약하고 은퇴 후 코치를 거쳐 단국대에서 프로 출신 최초의 역학 박사가 됐다. 올 시즌 성공적인 선수 육성과 기용은 실제 그의 학술적 식견이 접목된 성과로 평가된다. 최 감독은 피칭 이론 전문가로 올 시즌이 끝날 무렵인 10월 아시아 저명 학술지인 '더 아시안 저널 오브 키네시올로지'에 그의 관련 논문이 실렸다. 지난해에도 국제학술지에 '야구 오버핸드 투구동작에 대한 운동역학적 분석'과 '시각차 운동훈련에 따른 대학야구 투수들의 근 활성도 증가'를 주제로 한 논문이 게재되는 등 투수들의 기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매커니즘과 트레이닝 방법에 대한 연구 성과를 꾸준히 축적해 왔다. 그리고 이는 올해 그의 지도 방식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최근 데이터 야구가 KBO리그에 유행처럼 자리잡았지만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도출한 합리적 결과에 기반해 선수 양성 방향을 제시하고 직접 실천에 옮긴 지도자는 최 감독이 처음이었다.
최 감독의 논문 교신저자로 작업을 도운 신윤아 단국대학교 운동처방재활학과 교수는 "최원호 감독은 투수로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투수들의 피칭에 대한 역학적인 이론이 분명하고, 근육의 움직임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피칭거리와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트레이닝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다른 역학박사들보다 뛰어나 같이 연구를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유튜브만 열어봐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지도 방식은 선수들에게 혼란과 불신만 야기시킨다"면서 "선수가 지도자를 신뢰할 때 팀의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주관'보다 '객관'이 팀에 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자 시스템 야구의 출발이다. 시즌 종료 후 마무리 캠프까지 책임지고 퓨처스 감독으로 돌아간 그는 "기준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인정받은 것에 감사하다"면서 "올해가 끝이 아닌 시작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감독을 영입해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한화에 더욱 필요한 중장기 프로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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