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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깡통 대신 장대를 들었다

입력
2020.12.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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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트레비 분수의 동전 도둑

트레비 분수의 동전을 수거해 생계를 잇던 로베르토 체르첼레타. 2013년 자해 당시 모습. AP 연합뉴스

트레비 분수의 동전을 수거해 생계를 잇던 로베르토 체르첼레타. 2013년 자해 당시 모습. AP 연합뉴스


2018년 강원도 한 사찰 측이 경내 연못의 동전을 수거해 한국은행에서 900여만원을 교환해 간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밀레니엄 홀 1층 연못에서 건져내는 동전이 한 달에만 2,000만원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절이나 명승지, 연못, 음수대, 돌탑 등에 동전을 던지거나 올리는 습관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옛사람들이 서낭당을 지나치며 과일이나 떡 한 조각을 바치던 풍습이 그렇게 변모한 것일 수 있다. 물론 동전으로 축원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동서 보편의 일이다.

세계적 관광지인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 관광객이 던지는 돈은 2016년 기준 150만달러에 달했다. 시 당국은 그 돈을 매년 수거해 가톨릭 빈민 구호단체인 카리타스(Caritas)에 기부하는데, NBC가 보도한 바 그해 기부금이 이 정도였다고 한다.

로베르토 체르첼레타(Roberto Cercelletta, 자칭 '달타냥')라는 이탈리아인이 긴 장대로 트레비분수의 동전을 절취하기 시작한 건 1968년 무렵부터였다. 그는 일주일 중 '주일'을 뺀 6일간, 매일 새벽마다 평균 15분 정도 그 '작업'을 했고, 더러 경찰관이 본 적도 있지만 예사롭게 묵인해 줬다고 한다. 1999년 이탈리아 의회는 시 기념물 보호법을 개정하며 트레비 분수에 뛰어드는 등의 '훼손 행위'를 금지했다. 2002년 한 언론 매체가 '자선에 쓰일 돈이 사라지고 있다'는 요지의 보도를 하면서 그의 덜미도 잡혔다. 조사 결과 '성수기'엔 하루에만 1,000달러를 건진 적도 있었다. 그는 경범죄로 처벌받은 뒤로도 간간이 그 일을 반복했고, 2013년 5월 체포됐을 때는 자신의 처지와 단속에 항의해 자해를 하기도 했다.

어떤 매체는 그가 동전절도단을 이끈 두목이라고 썼고, 어떤 매체는 가난한 시민일 뿐이며 수거한 돈으로 더 가난한 이웃들에게 적선을 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독신이었던 그가 2013년 12월 18일 로마 변두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항년 62세.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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