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시민단체 명예훼손 고소 추진에
구속된 국장 등 "정부 지지기반" 설득
'월성 폐쇄' 광범위한 사전작업 방증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으로 구속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원전 폐쇄에 찬성하는 시민단체 관계자에 대한 고소 결정을 취소하라는 설득에 직접 나섰던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산업부 원전 라인이 원전 정책뿐 아니라, 원전 폐쇄에 힘이 되어 줄 시민단체와의 관계를 원활히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뛰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정황으로 해석된다. 고소 결정 취소 설득 작업은 당시 산업부 장관에게까지 보고됐다.
여당 인사 고소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뛴 산업부
1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 12월말 산업부의 A 국장과 B 과장은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관계자와 서울의 중식당에서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A 국장은 월성1호기 자료 파기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인물이고, B 과장은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의 기각으로 구속을 면했다. A 국장과 B 과장, 그리고 자료 삭제 혐의로 구속된 C 서기관은 월성1호기의 경제성 평가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이용률’과 ‘판매 단가’를 대폭 낮추도록 한수원과 회계법인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핵심 관계자다.
이날 중식당 회동의 목적은 한수원 노조가 추진하던 고소 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한수원 노조는 환경 관련 시민단체에서 간부로 일하던 D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었다. D씨가 언론을 통해 한수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핵 마피아’로 지칭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한수원 노조는 A씨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까지 작성해 서울서부지검에 제출하려던 차에, 산업부 측의 연락을 받고 만남을 가졌다.
이날 A 국장은 "굳이 고소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라거나 "노조와 환경운동단체가 현 정부의 핵심 지지기반인데 원전 부문에서 사이가 틀어지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고소장을 접수하지 말도록 설득했다. 이후 D씨는 제21대 총선에서 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국일보는 당시 중식당 회동에 참석했던 B 과장에게 당시 상황을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산업부 측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라 드릴 말씀이 없고, 비공개 회동이라서 확인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답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도 비공개 회동 인지
'고소 무마'가 당시 산업부의 공식 입장인지, 아니면 A 국장과 B 과장이 개인적으로 추진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부 원전 라인과 한수원 노조의 만남은 백운규 당시 장관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수원 노조에 따르면 A 국장은 그 자리에서 "장관님에게 이번 만남을 보고 드렸고, 장관님이 노조 측과 소통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B 과장은 "산업부 역시 월성 1호기 폐쇄를 엄청나게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 했다고 한다.
이날 노조 관계자들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월성1호기 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이해하고, D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만남에서 오갔던 이야기와 달리, 6개월 후인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으로 월성1호기는 조기 폐쇄가 확정됐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한수원 관계자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정부와 노조 입장 모두를 충족하는 공통분모를 찾고 있다고 해놓고 뒤에서 이런 엄청난 일(조기 폐쇄)을 벌일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산업부 원전 라인이 노조와 시민단체 간 고소 문제에까지 관여한 것은 그들의 활동 반경이 매우 광범위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부가 청와대 뜻(탈원전)을 받들기 위해 갖가지 '사전 정지작업'에 직접 나섰다는 뜻이다. 감사원 감사자료에 따르면 산업부 원전라인은 한수원이 회계법인에 발주한 경제성 평가 작업의 회의에까지 참석했고, 이 회의에서 구체적 이용률 수치(30~40%)를 직접 제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구속된 A 국장과 C 서기관을 상대로 당시 산업부가 한수원과 회계법인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한 경위와 과정을 조사 중이다. 이들이 경제성 평가 변수인 이용률과 판매 단가 계산에 인위적으로 손을 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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