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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명언은 시대를 초월한다. 약 450년 전 율곡(栗谷) 이이 선생이 무능한 임금 선조의 면전에 고한 직언은 지금의 나라꼴을 꾸짖는 칼럼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건국 200년을 목전에 둔 조선은 선조의 전임인 명종 때 윤원형 일파의 국정농단 등을 거치며 국운 쇠락의 조짐이 뚜렷했다. 임진왜란의 전운이 7년 앞으로 닥쳐오는데, 조정은 동·서 당파로 갈려 기강이 무너졌고, 선조는 선군(善君) 코스프레에 빠져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 “지금은 나라에 기강이 없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다시는 희망이 없습니다. (중략) 기강은 법령과 형벌로 억지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정이 착한 것을 착하다 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 하여 공정함을 얻어 사사로운 마음이 유행하지 않아야만 기강이 서는 것입니다. 지금은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正)이 사(邪)를 이기지 못하니 기강이 어떻게 서겠습니까?”(선조 6년, 1573년 ‘경연일기’)
▦ 사실 율곡 선생은 관작이나 경세가로서의 면모보다는 조선의 성리학을 완성한 대유학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직에 나아가서는 쇠락한 국운을 되살리고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당대의 혁신가이기도 했다. 선생은 혁신적 주장들을 유명한 ‘만언봉사’를 비롯해 수많은 상소와 경연에서의 직언을 통해 임금에게 제시했다. 요즘으로 치면 국정 진단과 비판, 정책 제안 등이 담긴 언론의 칼럼인 셈이다.
▦ 수백 년 전 율곡의 ‘칼럼’에 생기를 불어넣은 이는 임철순 전 한국일보 주필이다. 그는 최근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열린책들 발행)을 통해 ‘언론가’로서 율곡의 생애와 주장을 되짚어 오늘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며 혀를 찼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씨에 대해 사사로이 ‘마음의 빚’을 언급하고 법무장관의 일탈에 대한 검사들의 저항을 ‘집단 이기주의’로 희석하는 등, 그 동안 숱하게 공(公)과 사(私)를 흐리고 정(正)과 사(邪)를 헷갈림으로써 국가기강의 문란을 자초해 왔다”는 게 그의 담백한 직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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