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도 '무용지물'...거대여당의 손쉬운 '입법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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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도 '무용지물'...거대여당의 손쉬운 '입법독주'

입력
2020.12.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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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가결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막바지에 속도를 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 주요 쟁점법안들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경제3법(상법ㆍ공정거래법 개정안ㆍ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비롯해 대부분의 법안들은 정기국회 마지막인 12월 9일과 임시국회 첫날인 12월 10일 통과됐다. 공수처법 개정안 등 주요 쟁점법안 처리에 동의하지 않았던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으로 맞섰지만, 민주당의 입법 강행 의지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6석의 정의당이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에서 제동을 걸었던 게 민주당을 당황케 한 유일한 ‘장면’이었다. 공수처법 처리를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도 공개적인 메시지를 보내며 민주당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 처리에는 성공했지만, 여야간 대치 정국은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이번 정기국회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의 전략과 속내 등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 국회팀과 청와대팀 기자들이 카톡방에 모였다.

나를 돌아봐(돌아봐)=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 처리에 가장 역점을 뒀던 법안은 공수처법 개정안이죠. 이를 처리하기 위해 어떤 움직을 보였나요.

야반도주= 사실 7일 오전 10시30분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 때까지만 해도 “양당 원내대표가 밀도 있게 협의하기로 했다”는 결과가 발표돼 타협 가능성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근데 민주당이 법사위 소위에서 5ㆍ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 비쟁점 법안이란 이유로 단독처리하면서 여야가 충돌했죠. 바로 법안소위 안건조정위에서 공수처법이 통과되고 바로 이어 열린 전체회의에 상정, 통과됐죠. 국회의장 주재 회동이 있은 지 1시간 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영등포 청정수(청정수)= 민주당은 정기국회 최우선 과제였던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7일부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 '비토권'을 삭제하는 개정안 통과를 민주당이 추진하자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에 이 법안을 회부하며 맞섰죠. 하지만 법사위원장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을 포함시키며 안건조정위를 '민주당3, 열린민주당1, 국민의힘2'로 구성했죠. 8일 안건조정위와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10일 본회의에서 속전속결로 통과됐습니다.

돌아봐= 공수처법 처리를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도 메시지를 냈는데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마음은콩밭에=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법안 처리를 위해 움직이던 7일 "위대한 촛불혁명을 거치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마지막 숙제"라며 "공수처 출범을 희망한다"고 했어요. 사실상 ‘처리를 강행하라’는, 민주당을 향한 주문으로 해석됐죠. 민주당의 입법독주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대통령만이 갖는 ‘권위’로서 국민들에게 여당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죠. 10일엔 공수처 통과 1시간 만에 “다행이다” “감회가 깊다”고 말했어요. 저서에서나, 취임사에서나, 공식ㆍ비공식적 발언으로나 문 대통령이 공수처 출범을 숙원사업으로 여겨왔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데요.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새해 벽두 정식 출범도 기대한다"고 했어요. ‘기대’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연말까지 공수처 출범 준비를 끝내달라는 여당을 향한 주문이기도 했죠.

돌아봐=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 저지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죠.

외계인치킨(치킨)= 안건조정위원회든 필리버스터든 소수당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174석 거대 여당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걸 모두가 목격한 상황이었죠.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모두 가져간 상태에서 안건조정위는 구성부터 6:4로 사실상 '프리패스' 상태였고, 필리버스터 역시 민주당이 여권 성향의 무소속과 소수당 의원까지 180석만 끌어모으면 24시간 만에 강제종료 시켜버릴 수 있죠.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항의도 세게 했다간 재판 받게 생겼고요. 상임위에서 깨지고, 본회의에서 깨지고, 거대 여당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처음부터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굉장히 컸다고 해요.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럴 거면 국회에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국회를 해산하는 게 낫다. 야당 의원들 총사퇴라도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정도였죠.

돌아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에 힘을 줬지만 주목도가 이전만 못한 거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치킨= '필리버스터를 해봤자 결국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일반국민들도 학습효과로 알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같습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때도, 2019년 공수처법 제정 때도 당시 야당들은 필리버스터를 했지만 결국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없었죠. 야당이 필리버스터로 얻어낼 수 있는 건 국민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절절하게 호소해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걸 텐데, 이게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 같습니다.

돌아봐= 공수처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투표를 하지 않고,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기권을 했는데.

정치적 식물= 조 의원은 평소 검찰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공수처에는 고개를 갸우뚱 했어요. 검찰개혁을 하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하는데, 그러면서 수사와 기소권을 동시에 쥔 공수처를 새로 만든다는 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드는 모순된 행동 아니냐는 우려였죠. 제 식구 감싸기가 의심되는 검사, 판사 등 고위공직자 비리를 솎아 내려면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는 당내 주류와 의견차를 보인 건데요. 당내에는 조 의원이 검사 출신이라 검찰 편을 든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공수처법 개정안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장 의원은 기권 결정 직후 “민주주의를 위한 검찰개혁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죠.

돌아봐= 103석의 국민의힘보다 6석의 정의당이 민주당을 당황시켰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야반도주= 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민주당의 독주에 잠시 제동을 걸었는데요. 조정위원으로 포함된 배 의원이 사회적참사진상규명특별법(사참법) 개정안에 보완을 요구했기 때문이죠. 배 의원이 법안 의결에 뜻을 같이하지 않으면 의결 정족수(4명)를 채우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부랴부랴 세월호 유가족 등과 함께 배 의원이 수용할 수 있는 수정안을 마련해 법안을 처리했죠.

청정수= 배 의원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때도 민주당과 다른 입장을 내며 논의를 지연시켰습니다. 민주당은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정부안대로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시킨 후, 곧이어 열린 전체회의에서 이를 뒤집어 '전속고발권 유지'가 담긴 수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정의당이 민주당의 '꼼수'를 지적하며 크게 반발하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봐= 여야 관계의 냉각은 불가피해 보이는데 연말 정국 기상도는 어떻게 예상하나요.

야반도주= '미니 대선'이라는 평가를 받는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예고된 터라 안 그래도 연말부터 여야간 과열 정쟁이 예상됐습니다. 지난주 일부 부처 개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줄줄이 예정된 상황이라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데요. 더구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0일 태극기 세력으로 대표되는 극우진영 인사까지 포함한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 연대’에 이름을 올리면서 분위기는 더욱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정권 하반기에 그립을 놓지 않으려는 여당과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야당의 극한 대치도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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