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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감성, '차별'을 조명하다

입력
2020.12.10 17: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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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로맹 가리 '흰 개'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첫손에 꼽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한국일보> 에 격주 금요일 글을 씁니다.

로맹 가리. 마음산책 제공

로맹 가리. 마음산책 제공

로맹 가리(1914-1980). 공쿠르상을 유일하게 두 번 받은 프랑스 작가(아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해 한 번 더 수상한 바 있다). 외교관. 권총자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자기 앞의 생. 새벽의 약속…. 그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인도주의’란 말이 떠오른다. 그는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을 꿰뚫어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을 믿는 사람이다. 수시로 절망하지만, 끝내 희망을 찾아내는 사람.

“내가 희망에 매달릴 때는 가히 따라올 자가 없다.”(43쪽)

물론 그는 희망을 서랍에 처박아두고 권총 자살했다. 1980년, 이혼한 아내 배우 진 세버그가 자살한 지 일 년 뒤다. 작가를 얘기할 때 사생활을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소설 '흰 개'를 위해선 얘기할 필요가 있다. '흰 개'는 로맹 가리의 자전 소설이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가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실제 진 세버그는 흑인 인권운동에 뛰어든 후, 여기저기에서 이용당하고 협박 받으며, 악소문에 시달렸다. 이 일이 그들을 불행하게 했다. 진 세버그는 젊고 아름다운 백인이며 스타인데다, 인권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심성이 여렸기에 누군가에겐 이용하기 좋은 인물로 보였을 테다.

“그것은 회색 개였다.”

소설의 시작이다. 1968년 2월, 베벌리힐스에서 로맹 가리의 인생에 끼어든 바트카는 순하고 충실한 개다. 그런데 흑인만 보면 공격하도록 훈련받은 경찰견이었음이 밝혀진다. 로맹 가리는 사육장에 개를 맡겨, 재훈련(치유)을 의뢰한다. 흑인에 대한 공격성을 완벽히 습득한, 나이 많은 개를 바꾸는 게 가능할까? 이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작가는 차별하는 자, 차별 받는 자, 차별 받는 자를 돕는 자, 돕는 자를 이용하는 자 등 ‘차별’이란 문제 앞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개한테 이런 짓을 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어……. 바트카를 떠올린 건 아니었다. 우리 모두를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한 거지? 대체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지? 내게 “사회”라고 답하지 말아 달라. 우리 뇌의 본성 자체가 원인이다. 사회는 진단의 한 요소일 뿐이다.” (163쪽)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개인이 보이는 반응은 설사 휴머니즘을 표방하고 있을지라도, 종국엔 ‘이기심’으로 귀결되기 쉽다는 말이다. 작가는 “미국 지식인의 남다른 특징”으로 죄의식을 꼽는데, 죄의식이란 “자신이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신분을 보증해줄 표시를 내보이는 것이고, 엘리트에 속한다는 걸 입증해 보이는 것”(184쪽)이라고 꼬집는다.

흰 개

  • 로맹 가리 지음
  •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발행
  • 288쪽ㆍ1만3,000원

'흰 개'는 로맹 가리의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감성이 고루 담긴 특별한 작품이다. 68혁명이 한창인 프랑스 파리와 흑인 인권문제가 대두되던 1968년 미국이 배경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시종일관 유머를 구사하는 주인공 덕에 자주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세 쪽에 한 두 문장씩, 명언이 쏟아진다. (정말이다.)

차별과 멸시는 유혈사태와 증오, 대물림되는 전쟁, 피해의식, 공격욕구(=방어욕구)를 부른다. 모든 차별에 반대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로맹 가리가 모든 성공한 혁명도 결국 실패한 혁명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 흰 개는 나쁜가? 흰 개를 만든 사람이 나쁜가? 흰 개의 끔찍해진 성향 때문에 죽이자고 하는 사람이 나쁜가? 방관하는 자가 나쁜가?

흰 개가 만들어지는 한 누구 하나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저 흰 개다. 우리의 싸움은 ‘다름’을 공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분명한 건 흰 개가 원래 나쁠 리 없다는 거다. “인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간을 만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는 개의 눈 속”이라는 문장을 믿자. 그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것은 회색 개였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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