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저지를 위해 국민의힘이 실시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은 역대 최단 시간으로 끝났다. 토론자로 나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과거 공수처 관련 발언을 고리로 민주당을 비판했지만, 정기국회 회기 종료 규정 때문에 3시간만에 종료됐다. 본회의장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김 의원 앞에서 검찰개혁 책을 꺼내놓고 읽었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9시 공수처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직후 국회 단상에 올라 토론에 나섰다. 김 의원은 '나라가 왜 이래'라고 쓰인 검은 마스크를 쓰고 '민주주의 법치주의 근조'라고 쓰인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김 의원은 헌법 1조를 낭독하며 운을 뗀 후 "대한민국은 문주공화국(문재인 대통령+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문님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문빠들로부터 나온다"며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여당이 공수처법 강행처리에 나섰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현재 공수처법에 보장된 야당의 공수처장 임명 '비토권'을 조정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은 야당이 2명을 구성하는 7명의 공수처장 후보추천위가 6명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데, 개정안은 의결정족수를 3분의 2 이상으로 완화한다. 김 의원은 "야당 동의 없이는 공수처장을 뽑을 수 없다"던 과거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을 본회의장 화면에 띄우고는 "왜 민주당 의원들의 말을 못 믿겠다고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공수처를 출범시키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면 형사사법의 정의가 바로 서느냐'고 당을 비판한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인용하면서 "조 의원이 또 금태섭 전 의원처럼 될까 겁이났다. 조 의원에게 죄송하다"고도 했다. 금 전 의원은 지난해 공수처법 통과 시 표결에 기권했다가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후 탈당했는데, '소신발언'을 한 조 의원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김 의원의 필리버스터에 이따금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했으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윤 총장 직무배제로 정면 충돌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무위원석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추 장관이 읽은 책은 검사 출신인 이연주 변호사가 쓴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의원의 발언에 일어나서 호응을 보냈다. 김 의원이 2시간째 발언을 이어가다 물을 마시자 "화이팅"이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김 의원은 "오늘 기저귀를 차고 와서 끄떡 없다"고 답했다. 김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9일 자정 종료됐다. 국회법은 필리버스터중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9월 정기국회 회기가 이날 종료됐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10일 열리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돼 처리될 전망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