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한수원 사외이사 5년 투표현황 분석
반대표 중 하나는 월성1호기 폐쇄 때 나와
대전지검, 당시 사외이사 소환해 사실 확인
전체 1,298표 중 찬성 1,296에 반대 2. 반대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찬성 일색의 결과가 나온 곳은 바로 '탈원전' 이슈로 뜨거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다.
대주주를 견제하고 경영진에 쓴소리를 해야 할 한수원 사외이사들은 최근 5년간 수백건의 안건 중 99.8%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없는 분위기로 이사회가 흘러가면서, 한수원 입장에서 손해일 수 있었던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마저 정부 뜻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외이사 찬성률 99.8%
9일 한국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개된 한수원의 2016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이사회 현황을 전수 분석한 결과, 총 51차례 회의에 올라온 310건의 안건 중 297건(95.8%)이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이사회 내부 논의를 통해 수정되거나 조건부 통과된 안건은 10건(3%)에 불과했다. 부결은 없었다.
이사들의 투표 현황을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 중 1건이라도 반대를 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5년간 유일한 반대표를 던졌던 사외이사는 원전 전공자인 A교수로, 2017년 '신고리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안'과 2018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안'에 유일한 반대표를 던졌다.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외부 인사를 집행기관인 이사회에 참가시키는 것이다. 회사 밖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경영진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사회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월성1호기 폐쇄 때도 반대 1명
그러나 한수원 사외이사들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이어진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서도 충분한 경제성 평가 없이 찬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2018년 6월 15일 이사회 속기록에 따르면, 한 회의 참석자가 "이런 기준(가동률 54%)을 적용하면 향후 원자력안전위원회 판단 기준 자체가 높아진다. 당장 문제가 있다고 이걸(원전 조기폐쇄) 통과시켜도 되냐"고 묻자, 한수원 측 관계자가 "(일단 표결을 진행하고) 다음 회의 때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앞뒤가 뒤바뀐 얘기였지만 이사들은 추가 질의 없이 넘어갔다.
또 다른 참석자가 전력 수급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자 다른 이사는 "신한울 2호기가 완공에 가까이 있어 전체로 보면 늘어난다"며 한수원 입장을 대변했다. 현재까지도 신한울 2호기는 부지 안전성 평가로 운영 허가가 2년 가까이 연기돼 가동 시점이 미지수다.
월성1호기의 운명을 결정한 그 날 이사회는 최소한의 검토 시간조차 보장되지 않고 속전속결로 이뤄졌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다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회의는 소집 사실이 회의 전날 사외이사들에게 공지됐고,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핵심 근거가 된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 결과 또한 미리 통보되지 않았다.
이사회 일정이 급박하게 추진되면서 조기 폐쇄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이뤄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 정상적 표결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전직 한수원 사외이사는 "그냥 찬성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거쳐 결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수원, 원전 폐쇄 반대한 이사 고소
당시 유일한 반대 의견을 낸 A 교수가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한수원 측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A 교수를 고소하기도 해, 재갈 물리기 논란에도 휘말린 상태다.
월성1호기 폐쇄 과정과 관련한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이미 구속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정책 라인 공무원들이 한수원 정책 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말 당시 한수원 이사들을 잇달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다른 회사 사정도 비슷해서 한수원만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월성1호기 폐쇄를 결정했던 이사회의 절차상 논란에 대해서는 "감사원도 이사회 부분을 특별히 지적하지는 않았다"며 "현행법상 긴급 사안에서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 절차상 문제될 점도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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