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보다 인종차별 반대가 우선
경기가 시작된 지 13분이 지난 시점, 주심은 휘슬을 불어 경기를 중단했다. 그리고는 벤치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뒤 레드카드를 꺼냈다. 무언가에 거세게 항의하던 터키 바샥셰히르 코치 피에르 웨보(38ㆍ카메룬) 코치를 향한 퇴장 명령이었다. 웨보 코치는 심판진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채 그들을 향해 작심한 듯 반복해 소리쳤다. “왜 ‘흑인’이라고 말하냐!”
웨보 코치의 외침은 이날 경기에서 대기심을 맡은 세바스티안 콜테스쿠(43ㆍ루마니아) 심판의 발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국 ‘메트로’ 등 외신들에 따르면 콜테스쿠 심판은 경기 중 주심과 무전을 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을 향해 ‘흑인’이라고 일컬으며 무언가에 대한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관중 경기 속에 이 대화를 가까이서 듣게 된 웨보 코치가 대기심에 강력히 항의했고, 이를 확인한 주심이 웨보 코치를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뎀바 바(35ㆍ프랑스)도 침묵을 깨고 심판들을 향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이중국적자로 세네갈 국가대표팀에도 몸을 담았던 그는 웨보 코치보다는 훨씬 침착한 어투로 조목조목 따졌다. “당신들이 백인 선수들에게 ‘저 백인’라고 말하지 않을 거다, ‘저 사람’이라고 말했겠지. 그런데 왜 흑인 선수들에겐 ‘저 흑인’라고 부르는 거야?”
어떤 대회 관계자는 심판팀이 루마니아어로 대화한 게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변명했지만, 이는 되레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을 더 격분하게 만든 모습이었다. 결국 바의 통솔 아래 바샥셰히르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향하며 경기 재개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상대팀인 파리 생제르맹(PSGㆍ프랑스)의 스타 킬리안 음바페(22ㆍ프랑스)는 소리 높여 상대팀 선수들의 의견에 지지를 보냈고, 상황을 파악한 다른 선수들도 모두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이 두 팀의 경기로 마무리될 ‘별들의 전쟁’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이렇게 멈춰 섰다. UEFA는 문제가 된 콜테스쿠 주심을 비롯한 심판진을 교체한 뒤 이튿날 경기 잔여시간을 소화하기로 했지만, 이미 경기 결과와는 관계 없이 축구계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촉매제가 된 모습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웨보 코치의 외침, 바의 저항, 그리고 경기보다 인종차별 문제를 우선시 하며 경기를 미룬 양팀 선수들의 항의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종차별반대 메시지를 담은 해시태그(#Notoracism)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가운데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자신의 SNS에 “두 팀의 경기에서 발생한 인종차별 발언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UEFA가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내릴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UEFA는 “PSG와 바샥셰히르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발생한 사건과 관련, 철저한 진상조사를 벌일 예정”이라면서 “축구계에 어떤 형태의 인종차별도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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