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서 파룬궁 등 참석 '트럼프 재선 지지' 시위
'아베 지지' 극우인사들 SNS서 부정 의혹 확산
트럼프·아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불신 영향도
일본에서 지난 11월 진행된 미국 대선 결과와 관련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극우 논객들이 중심이 돼 부정 투표 의혹과 '트럼프 승리’ 주장이 확산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 힘으로 대응하는 트럼프 지지"
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도쿄 한복판에서 미 대선의 부정을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시위가 열렸다. 히비야공원을 출발한 이들은 "미국 대선의 승자는 트럼프, 바이든이 아니다" "미일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긴자까지 행진했다. 일본 경찰 추산으로 이번 시위에는 650여명이 참가했고 중국 공산당이 사이비종교로 규정하는 파룬궁 등 신흥종교 관계자들도 다수 포함됐다.
이들의 주장은 미 대선의 부정만이 아니었다. 시위대가 들고 행진한 성조기와 일장기 사이에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별들이 늘어선 깃발이 눈에 띄었다. 아사히에 따르면, 중국 반체제 재벌로 미국으로 도피한 궈원구이(郭文貴)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이 6월 결성한 '신중국연방' 깃발이었다. 시위대 일부에선 "중국 공산당을 타도하라"는 구호도 나왔다.
시위에 참가한 70대 부부는 "중국에 힘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말했다. 9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싫었다고 밝힌 50대 여성은 "서구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위화감을 느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미국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며 악과 싸우는 자세에 감명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파룬궁 신자인 친구와 재미 중국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경로는 주로 SNS 등 인터넷이었다.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고쿠가쿠인대 명예교수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미디어를 선택해 그 정보만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자신들만 올바르고 다른 정보는 몰라도 된다며 다른 관점을 차단해 버리는 측면이 근본주의적 종교의 시각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아베 지지' 극우층 SNS서 부정 의혹 확산
극우 성향의 소설가 하쿠타 나오키(百田?樹)와 가도타 류쇼(門田隆將), 언론인 아리모토 가오리(有本香) 등은 자신의 SNS에 미 대선의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극우 매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SNS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 투표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관련 정보를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햐쿠타는 지난달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미 대선에서 대규모 부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가도타는 지난달 17일 트위터에 "위스콘신주에서는 실제 투표율이 90.2%로 판명. 인구의 90%가 투표? 역시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글을 올렸다. 아리모토는 햐쿠타의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일본 언론들은 왜 일본과의 전쟁을 개시했고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미국) 민주당 대통령에 호의적인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지난 5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이들의 주장은 일본의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역사전쟁' 구도와 맞닿아 있다. 전쟁사 연구자인 야마자키 마사히로(山崎雅弘)는 "(미 대선이) 부정 선거라는 정보를 확산시키면서 트럼프 승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있어 '승패'를 미 대선에 덧씌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일본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역사전쟁'과 같은 구도라는 지적이다.
일본에서 역사전쟁을 주장하는 이들은 중국과 한국이 일본을 깎아 내리기 위해 과거 전쟁과 관련해 '거짓 역사'를 국제사회에 확산시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재선을 외치는 이들의 논리는 "(적국인) 중국과 한국에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적의 적인 트럼프는 아군"이란 논리
'적의 적은 아군'이란 말이 있다. 이처럼 중국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부 극우 인사들에게는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은 '든든한 아군'이자 '좋은 사람'인 셈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극우세력이 지지해 온 아베 전 총리와 '브로맨스' 관계로 알려질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때문에 자신의 편인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리버럴'하다고 평가 받는 언론들이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음모론이 확산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를 지지하는 극단적인 세력들은 이러한 언론에 '좌익'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들의 적인 해당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실제 일본어로 된 트윗 중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이 아베 전 총리 지지층과 겹치는 결과가 나왔다. 도리우미 후지오(鳥海不二夫) 도쿄대 준교수가 지난 10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트럼프' '바이든' ‘미 대선' 등을 포함한 일본어 트윗 약 447만건 중 가장 많이 공유된 50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트럼프 지지층으로 추정되는 약 10만명의 계정에서 58만여건의 트윗을 올렸고, 이 중 60% 이상이 과거 아베 전 총리를 지지하는 글을 공유한 적이 있는 보수 성향의 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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