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샘 44호 돌무지덧널무덤 발굴 조사 결과 발표
경북 경주시 황오동 349-3번지 일대. 대릉원 인근인 이곳에서 2007년 버려진 고분이 있다는 게 파악됐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전봇대를 뽑고, 나무와 풀을 제거하고 흙을 긁어내리니 무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고리, 금ㆍ은팔찌, 금ㆍ은반지, 은허리띠 장식이 나왔다. 무덤의 주인공은 1,500여년 전 신라 시대를 살던 왕족 여성으로 추정됐다. 해당 장식들이 신라 왕족 여성들이 착용했던 전형적인 장신구 조합인 까닭이다.
발견된 장신구들은 다른 무덤에서 나온 것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무덤의 주인공이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이한 건 피장자의 발끝에서 발견된 한 무더기의 바둑돌이다. 이제껏 바둑돌은 남성의 묘에서만 주로 발견돼,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을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신라 바둑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졌다.
7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를 정밀발굴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쪽샘지구는 경주 황오ㆍ황남ㆍ인왕동 일대에 형성된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의 집단 묘역이다.
이번 조사 대상인 쪽샘지구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 가운데 왕과 왕족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릉원 지구에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지름은 약 30m로 신라 고분 중에서는 중형급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발굴 결과를 토대로 무덤의 주인공이 왕족에 준하는 상당히 높은 계층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남색 유리 구슬, 금 구술 등을 엮은 것에 옥을 매단 형태의 가슴걸이가 돋보이는데, 이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된 디자인이다.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도 발굴됐다. 이 역시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출토됐던 것이다. 비단벌레는 녹색 또는 금록색 광택이 나 장식품에 사용돼 왔다.
금동관을 비롯해 착장 장신구의 크기는 전체적으로 작았다. 무덤의 주인공이 미성년자였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는 이유다.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150㎝ 안팎의 키를 가진 여성으로 보이는데, 키보다는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기 때문에 미성년자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큰 칼 대신 은장도를 품은 점, 각종 보석류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는 점 등은 무덤의 주인이 여성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돌절구와 공이 한 세트도 발견됐는데,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됐던 도구로 보인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정교한 형태로 만들어진데다 주변에서 운모(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약으로 인식됐던 광물의 일종)가 나와 약용 절구로 추정된다”며 “피장자가 평소 허약하거나 건강이 좋지 못해 사후 세계에서도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함께 묻은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바둑돌 200여점이 발견된 것도 눈길을 끈다. 여성의 묘에서도 바둑돌이 나오면서, 그 때의 여성도 즐겼을지 모른다고 추정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보돈 교수는 “당시 여성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 이야기해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신라 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다량의 유물이 나온 것뿐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정밀하게 조사돼 신라 시대 무덤의 축조 양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최병현 전 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무려 6년에 걸쳐 발굴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 발굴 관행을 비춰보면 엄청나게 긴 기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만큼 고분 내부를 세밀하게 조사한 예가 없는데, 이번 발굴을 통해 신라 적석목곽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축조됐는지가 세밀하게 밝혀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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