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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올해 세계를 뒤흔든 것에 락토파민을 빼놓을 수 없다. 성장 촉진제인 락토파민을 먹인 돼지가 허용되는 나라는 미국 한국 등 20여 곳. 중국, 유럽연합(EU)을 비롯한 160여 국에선 금지된다. 금지냐, 허용이냐 결정이 어려운 건 두 변수 때문이다. 미국 양돈 수출업체가 아이오와주 등 스윙 스테이트에 많고, 그래서 미 대통령은 선거를 위해 교역장벽을 낮춘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 락토파민 돼지가 정치를 하는 셈인데, 최근 그 불똥이 대만과 태국으로 튀었다.
□ 대만은 트럼프 정부에 손을 들어, 내년부터 미국산 락토파민 고기 반입을 허용키로 했다. 버티던 태국은 결국 일반특혜관세(GSP) 철회란 보복조치를 당했다. 대만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 국가적 이해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국민건강을 협상카드로 썼다는 비판 속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지난주 국회에서 돼지 내장이 날아다니는 난장까지 벌어졌다. 먹거리 주권을 지키려는, 먹거리 시민성이 표출된 대만 사태는 2008년 우리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와 닮아 있다.
□ 락토파민을 돼지에 먹이면 지방이 감소하고 단백질이 늘어난다. 도축 한 달 전부터 먹이면 살코기 생산이 현격히 늘어나는데 미 식품의약국(FDA)도 사용허가를 내줬다. 그럼에도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안전성 검사에 문제가 있다며 시장문을 닫아버렸고, 내장육을 즐기는 중국 역시 락토파민이 장기에 축적된다며 미국산 수입을 금지했다. 한국은 락토파민 논란에 관대한 편이다. 돈육 수입은 논란 없이 허용됐고, 락토파민을 주성분으로 개발된 사료첨가제 ‘페이린’ 역시 막대한 양이 사용된다.
□ 정작 락토파민에 예민한 나라는 미국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안전성 검사의 제한성, 다우너(앉은뱅이) 등 동물 행동장애 유발을 지적하고 있고 치폴레, 홀푸드처럼 락토파민 돈육을 취급하지 않는 곳도 늘고 있다. 사실 우리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당부하는 락토파민 취급 시 ‘주의사항’은 예사롭지 않다. “방호복, 보호안경, 분진마스크를 착용하고, 심혈관계 질환자는 노출에 각별히 조심하라.” 이런걸 먹여 키운 먹거리는 안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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