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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순서

입력
2020.12.0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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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부가 계약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연합뉴스

정부가 계약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연합뉴스

대재난을 다룬 영화에는 한정된 자원으로 누굴 먼저 구하느냐는 딜레마가 자주 등장한다. 태양 활동으로 인류 종말에 가까운 엄청난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그린 '2012'년에서는 이에 대비해 마련한 4개의 방주에 각국 고위층과 배를 만들 때 돈을 댄 부자를 태운다. 혜성과의 충돌로 벌어진 엄청난 재난을 다룬 '그린랜드'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건축가 등이 인원이 한정된 구조 비행기에 탑승하는 행운을 누린다. 절단 난 지구를 복구할 때 필요한 인력만은 살려야 한다는 논리다.

□새로운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수량이 한정될 때도 비슷한 고민에 봉착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예측한 듯 그려낸 영화 '컨테이전'에서는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추첨으로 정한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데 돈과 권력 쥔 사람을 우선하는 것은 비정한 현실의 논리일 뿐이다. 사회의 유지·복구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훨씬 설득력 있지만 이 역시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기 어렵다. 이론이 없기로는 아무래도 추첨만한 결정이 없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을 눈앞에 두고 각국이 접종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과거 신종 바이러스 확산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 경찰 소방관 등 사회 유지 인력, 감염 때 피해가 큰 집단의 3그룹에 우선 접종을 권한다. 프랑스가 내년 1월부터 1단계로 요양시설 거주자와 직원, 2단계로 65세 이상 고령자와 만성질환자, 의료진에 이어 4월쯤부터 전 국민 접종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논리다.

□그러나 백신을 개발하지도, 살 만한 여유도 없는 나라의 경우는 이런 고민조차 사치스럽다. WHO 등이 백신을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하기 위해 코백스(COVAX)를 만들어 각국 정부와 제약사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80여개국과 지역 참여는 전에 없던 성과이지만 내년까지 필요한 28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조달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백신 승인 1, 2위를 다투는 제약사들은 이 기구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코로나가 인간의 여러 행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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