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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세상은 어려워

입력
2020.12.06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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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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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코로나 19가 창궐하면서 해오던 강좌가 폐강되었다. 생쥐 발톱만한 수입이었지만 가난한 글쟁이한테는 그나마 가뭄에 단비 같은 벌이였건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구원투수처럼 강좌 의뢰가 들어왔다. 인터넷 강의? 강의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해 수강료를 받고 보여주는 건가? 카메라라면 울렁증까지 있어 그간 방송출연 요청도 고사해 왔다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번엔 앞뒤 잴 겨를도 없이 덜컥 계약까지 해버렸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번역 강의야 오래 했으니 그 과정을 촬영해 건네주면 그만 아닌가? 다만, 안이한 판단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인터넷 강의로 아르바이트하는 딸이 당장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아빠, 촬영하려면 조명, 마이크, 배경화면 준비해야지. 화장해야지. 그냥 유튜브 동영상 찍는 게 아니잖아. 소비자들한테 상품으로 내놓을 생각 아냐? 편집은 어떻게 하게? 강연 프로그램 다룰 줄 알아? 자막 넣을 줄 알아?” 유감스럽게도 그중 내가 해 본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 전, 신용카드 발급 신청을 위해 은행에 갔더니 고객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대개의 업무를 처리한다는데, 우리한테야 회원가입하고 로그인하는 것도 넘기 어려운 벽이다. 은행이 경로당 비슷하게 변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간신히 용무를 마치고 돌아갔더니 아내가 그런다. “인터넷으로 하면 금방인데 뭐하려고 그 먼 곳까지 갔대?” 이곳에서 은행은 한참 걸어가 버스를 타고, 다시 또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에 있다. 그나마 로그인 좀 할 줄 안다는 내가 이 모양이다. 사고구조가 이미 아날로그로 굳어진 탓이다.

사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슈퍼나 영화관, 패스트푸드점에도 셀프계산기나 주문기가 있건만 난 기어이 매장 점원들하고 실랑이를 한다. 음식점, 주점에 들어갈 때도 볼펜으로 출입명부에 기록을 남기고 만다. 조금 더 신경 쓰고, 모르면 배우고, 그럼 핸드폰 하나로 충분한 일인데도, 아내 말마따나 “늙어서 똥고집만 한바가지”다.

어느새 로그인을 해야 접속이 가능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텃밭으로, 산으로 툭하면 도망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겠다. 적어도 그곳에는 로그인이 필요 없으니 말이다.

강의 동영상을 준비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도 그렇다. 이제 강의조차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조명, 마이크는 딸이 구입해 설치해 주고 내가 더듬더듬, 혀까지 꼬여가며 강의를 마치면, 아들이 불필요한 공백, 잘못한 부분을 삭제하고 음악에 자막까지 입혀 그럴 듯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강의 담당자도 큰 곤욕을 치렀을 법하다. 내가 제일 연장자인지라, 간단한 인터넷 용어부터, 동영상 캡처, 플랫폼 사용법까지 몇 번씩 설명해야 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젊은 사람보다 세 배쯤 더 시간이 들고 서른 배쯤 짜증이 났을 것이다.

어른의 시대는 애저녁에 끝이 났다. 과거에야 어른이 닦아 놓은 길을 후대가 따랐다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 따라잡기도 벅차다. 세상에서 로그아웃 되기 싫으면, 똥고집 죽이고 아가리 닥치고, 젊은 사람들 말씀에 공손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싫으면? 지난 출장 때 어느 식당 주인처럼, “카드로 하려면 다른 식당 가슈. 난 그런 거 못하니까.” 끌끌 혀나 차며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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