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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안내견, 우리가 맞을 차례입니다

입력
2020.12.03 16:00
수정
2020.12.03 18:04
25면
0 0
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중전화를 이용하던 때였으니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학교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문이 열리기에 드디어 내 차례다 하고 가까이 다가서며 시선을 전화 쪽으로 두었는데 아래쪽에서 큰 개가 쓱 나와서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었다. 강아지와 그 주인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 후에야 노란 조끼를 입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때 사과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내가 소리를 질렀는데도 전혀 요동하지 않고 사용자와 갈 길을 가던 늠름했던 안내견의 뒷모습도 함께.

이번 주 한 대형마트의 직원이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라고 쓴 주황색 조끼를 입고 훈련 중이던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입장을 막으며 자원봉사자(퍼피워커)에게 "장애인도 아니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어떡하냐"며 언성을 높인 일이 있어 논란이 되었다. 해당 마트는 사과했고 전 지점에 '안내견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안내견을 대하는 에티켓을 적은 안내문을 부착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관한 뉴스가 연일 쏟아졌다. 그날 입장을 거부당했던 퍼피(안내견으로 훈련중인 강아지)는 수모를 당했지만, 다른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사용자가 겪어온 그간의 어려움을 알리고, 안내견에 대해 잘 몰랐던 이들의 인식이 변화에 큰 공을 세운 셈이 되었다.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예비 안내견과 봉사자. 누리꾼 인스타그램 캡처

롯데마트 잠실점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예비 안내견과 봉사자. 누리꾼 인스타그램 캡처


안내견 훈련은 동네 강아지가 받는 것이 아니다. 공격성이 낮고 대인 친화적이면서 또 호감형의 외모를 가진 우수한 종견이 낳은 강아지들 중에서 선발된다. 생후 7주 이후에 자원봉사자 가정에서 1년간 살면서 가정생활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이용하는 장소인 학교, 마트, 식당, 대중교통, 숙박업소등에 익숙해지는 사회화 훈련을 하는데 이것을 '퍼피워킹'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퍼피워킹 훈련 기간에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위탁 자원봉사자가 주황색 조끼를 입을 퍼피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이후에 안내견 학교에 들어가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는 글자가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고 '하네스'라고 하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서로 움직임을 전달할 수 있는 가죽 장구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노란 조끼를 입었다고 해서 모두 사용자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훈련 과정 중에 사용자의 말을 잘 듣는 복종 훈련과 함께 장애물이 앞에 있을 때에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멈추거나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비복종훈련도 받아야 한다. 수개월에 걸친 훈련 후에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하는 경우는 30%밖에 안 된다고 하니, 시각장애인 사용자 파트너를 만나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강아지는 정말 최우수 강아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믿고 의지하여 시각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앞서 걸어가는 안내견이 있기에 흰 지팡이로 모든 땅을 두드리지 않아도 안전하게 계단도 오르고 장애물도 피하고 엘리베이터 문도 찾고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것이다. 사용자와 떨어져 있지 않도록 훈련되어 하네스를 착용하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에겐 다가가지도 않으며 사용자가 앉아 있을 땐 옆에 얌전히 엎드려 있고,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짖지도 않는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렇게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을 도울 준비가 돼 있는데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장애인복지법 40조 3항과 90조 3항에 의해 누구든지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장애인 보조견 훈련 관련 자원봉사자 포함)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여전히 식당 카페 출입과 택시나 버스 탑승에 거부당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털이 날려서, 혹은 다른 손님이 싫어해서, 장애인 보조견이고 뭐고 무슨 동물이든 안 된다며 법으로도 정당하게 인정된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장애인의 일상생활에 차별을 가하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 귀엽다고 만지고 먹이를 주는 일도 안 된다. 안내견은 현재 집중하여 임무 수행 중이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일도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강아지가 아니라 사용자의 눈이다. 여기저기 부딪혀 멍투성이였던 시각장애인에게 안전하고 평범한 보행을 선물해주는 동반자이다. 최우수 강아지로 엄격한 훈련을 통과한 안내견은 공존의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제 시각장애인과 서로 행복한 공존을 위해 우리가 준비될 차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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