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차 기사 한상훈씨 "구하지 못한 두 분께 죄송"
“창밖으로 손만 흔들었어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1일 밤에 만난 사다리차 기사 한상훈(29)씨는 가슴을 쳤다. 옥상으로 대피하려다 계단에서 2명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한씨는 1일 오후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군포시 산본동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 사다리차를 뽑아 올려 3명의 주민을 구한 청년. 화재가 완전 진화된 지 4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그는 그가 ‘놓친’ 이웃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사다리차가 망가져도 사람 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사다리를 올렸다”며 “그냥 창문에서 살려달라고만 하셨어도 내가 구할 수 있었는데 두 분께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한씨가 이날 불이 난 집에 인테리어 자재를 올리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었다. 물건을 싣는 운반카를 12층 언저리에 걸쳐 놓고 물건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12층 공사 현장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처음 펑 소리가 나고 2, 3회 더 났던 것 같다”며 “사다리를 빨리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장비를 작동하던 중 12층 옆 라인 베란다에서 ‘살려달라’는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나 베란다 창문이 둥글게 밖으로 나온 형태여서 사다리를 대기가 여의치 않았다. 자칫했다간 운반카에 오르는 과정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베란다 옆의 방 창문 쪽으로 운반카를 댔는데, 그때 갑자기 베란다에서 불길을 치솟아 간신히 태워 내렸다”고 회상했다.
안도의 시간은 잠시. 여성을 운반카에서 내리자 마자 한씨는 15층을 향해 사다리를 밀어 올렸다. 창 밖으로 다급하게 내젓는 작은 손을 봤다. 화재가 난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사이로 살려달라는 목소리도 새어 나왔다.
문제는 한씨의 사다리차의 최고 접근 높이는 38m. 아파트 기준, 14층이 그의 사다리가 닿을 수 있는 최고 높이였다. 그러나 위험감지센서를 해제하면 41m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한씨였다.
치솟는 불길로 파편이 떨어지고, 자칫 사다리 운반카에 불이 붙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무작정 사다리를 뽑아냈다.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우선이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센서를 해제하고 차를 조금 더 앞으로 주차한 후 최고 속도로 사람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사다리를 밀어 올렸다”고 말했다.
센서를 해제하면 자칫 무게 중심을 잃어 넘어질 수 있고, 불법이 된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었다. 간신히 2명이 탄 운반카가 지상에 닿았고 거기에 초등생 남매가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남매를 직접 안아 운반카에서 내린 뒤 구급대에 인계했다. 이후 불이 다 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사다리차는 다시 사면 되지만 생명은 다시 되돌릴 수 없어 무작정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세 생명을 구해 다행이죠."
태권도 사범, 피자집 아르바이트, 현금수송 등 안 해본 게 없다는 한씨.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이 일 저 일을 하다 3년 전 지인의 소개로 사다리차 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일이 가장 적성에 맞는 것 같았는데, 오늘 같은 일을 접하고 말았다”면서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지금처럼 사람을 먼저 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