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나는 마오쩌둥의 개였다. 그가 물라고 하면 물었다."
1980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문화혁명(문혁) 주범 4인방 재판에서 마오쩌둥의 네번째 부인 장칭(江靑)은 이렇게 외쳤다. 재판은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이 문혁의 과오를 4인방에게 돌려 공산당 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정치 이벤트였다. 그런데 장칭이 마오쩌둥이 시키는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하자 당 지도부는 당황했다. 매체들이 장칭을 ‘희대의 악녀’ ‘영웅 마오쩌둥을 타락시킨 사악한 요녀’ ‘정치적 마녀’ 등으로 몰아간 이유다.
□문혁은 미국을 따라잡겠다며 마을마다 용광로를 설치하는 등 과도한 공업화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하고 수천만 명이 굶어죽으면서 위기에 몰린 마오쩌둥이 내건 극좌 운동이다. 봉건문화와 자본주의 독초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홍위병을 통해 정치적인 반대파와 지식인, 전문가 그룹을 숙청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들이 어머니를 '반혁명분자'로 고발해 사형이 집행된 일도 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공식 사망자만 170만명을 넘는다. 이를 주도한 게 바로 장칭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중국 문화혁명 당시 장칭의 얼굴이 연상된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기 위한 추 장관의 집요한 공격이 장칭의 광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역사적 배경과 시점이 다른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다분히 정치적인 윤 총장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러나 장칭이 혁명이란 대의를 내세웠듯 추 장관도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이란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마오쩌둥이 장칭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면서도 자신은 무관한 듯 처신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역사는 문화혁명의 가장 큰 책임은 마오쩌둥에게 있다고 썼다. 서슬 퍼런 권력을 행사하며 마오쩌둥의 후계자까지 꿈꿨던 장칭도 권좌에서 밀려난 뒤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여배우 출신인 그가 정치 무대의 희생양이 된 것이란 평가도 없잖다. 추 장관은 과연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