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가면' 고발 유튜버 못 찾아 수사중단... 자경단인가, 범법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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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우 가면' 고발 유튜버 못 찾아 수사중단... 자경단인가, 범법자인가

입력
2020.12.03 04:30
수정
2020.12.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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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 고발' 유튜버의 익명성
경찰, '사망여우' 신상 파악 못해 수사 중지
"익명 폭로는 감독기관 한계 보완하는 역할"

유튜버 사망여우. 유튜브 채널 사망여우TV 캡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나이트'. 재벌 2세 브루스 웨인은 박쥐 가면을 쓰고 시민을 돕는 자경단(배트맨)으로 활동한다. 경찰은 배트맨을 잡으려 하지만, 시민들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방관하는 경찰 대신 범죄를 해결하는 배트맨에 열광한다.

가면 쓴 자경단은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여우 가면을 쓰고 비양심 기업을 폭로하는 유튜버 '사망여우'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유튜버에게 지목당한 기업의 고소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경찰은 끝내 여우 가면을 벗기지 못했다. 수사는 멈췄지만, 국가가 못하는 일을 개인이 대신 하는 '사적 제재'의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사망여우 신원 못 밝힌 경찰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비양심 기업 고발 유튜버 사망여우를 상대로 접수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고소 사건에서, 사망여우를 참고인 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참고인 중지는 피의자·참고인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수사를 종결할 수 없는 경우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는 절차다.

결국 경찰이 사망여우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메일로 소환을 통보했지만 답이 없었고, 해외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신원을 특정할 수 없었다.

수사기관은 사망여우의 폭로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법리'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지만, 유튜브 여론은 사망여우가 이뤄낸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사망여우는 지난해 3월부터 유튜버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총 영상 조회수가 4,000만회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요 내용은 허위·과장 광고 등으로 소비자 권익을 침해한 의혹을 받는 기업들에 대한 비판이다. 최근에는 그룹 '룰라' 출신 방송인 이상민씨의 샴푸 뒷광고(광고가 아닌 것처럼 숨기고 상품을 홍보하는 것) 의혹을 폭로해 화제가 됐다.

유튜브는 왜 사망여우에 열광하나

소비자들이 사망여우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인이 아무리 항의해도 꿈쩍 않던 기업들이, 사망여우가 나서면 서둘러 사과나 환불을 하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온라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것)에서 '직접 개발한 상품'이라고 광고한 제품이 사실은 중국산 수입품이라는 점을 밝혀내, 크라우드 펀딩을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의 환불 정책 변경을 이끌어 낸 사례도 있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하는 기업 감시나 소비자 운동을 유튜버 한 명이 거뜬히 해낸 셈이다.

하지만 가면 뒤에 숨어 거침없는 저격에 나선 유튜버 활동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제도권 언론의 경우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언론중재위원회나 민사 소송을 통해 보도를 수정하거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익명 유튜버에게 피해 구제를 받을 길은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튜브에서 발생하는 권리침해에 심의 및 삭제 및 영상 차단 등의 시정 요구를 할 수 있지만, 조치 여부는 유튜브 자율에 맡겨져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사망여우가 진행한 테스트 등은 신뢰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이뤄진 경우가 많다"며 "일부 주장도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 경제적 피해가 추가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지난 2018년 5월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 하고 있다. 뉴스1


복면의 권리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나

반대로 상대적 약자인 개인이 거대 기업을 상대하려면 '가면'이라는 익명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신분을 밝히고 활동하는 유튜버들은 기업들의 법적 대응에 무차별로 노출돼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엔진 결함 문제를 제기한 유튜브 채널 두 곳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현대차로부터 9건의 고소를 당한 뒤 무혐의를 받은 박병일 자동차 정비명장은 "현대차가 미워서 그랬던게 아니고 소비자 의견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며 "고소가 아닌 대화로 풀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참에 가면 유튜버의 활동을 소비자 운동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유튜버에 재갈을 물리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고발 유튜버의 등장은 새로운 제도와 윤리가 확립되는 변화 양상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튜버의 폭로는 감독기관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역할도 한다"며 "필요하다면 공정위에 문제 제기 후 판정을 받고 방송을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승엽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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