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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팬심의 정체는 무엇일까

입력
2020.12.01 04:30
수정
2021.01.25 20:3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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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둥둥'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타심' 하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울고 있던 유치원의 같은 반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가장 좋아하던 인형을 양보했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물론 이 최초의 이타심은 그로 말미암아 선생님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칭찬을 듣게 되리라는 기대와, 그 칭찬이 불러일으킬 자기 효능감 등이 뒤섞여 발현된 행동이기는 했다.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특성이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성애, 낯선 행인을 구하기 위해 위험의 복판으로 뛰어드는 용기, 간호사나 소방관처럼 아예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 직업도 있다. 그런데 과연 이 고귀한 이타심의 목록에 ‘동경하는 연예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팬심’도 포함시킬 수 있을까?

릿터 10/11월호에 실린 이유리의 단편 ‘둥둥’은 최근 한국문학이 새롭게 조명 중인 ‘덕질’과 ‘팬심’을 바로 이 ‘이타심’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해석한 소설이다. 지난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 작가의 팔딱거리는 개성을 만나볼 수 있다.

주인공 은탁은 아이돌 ‘목형규’의 팬이다. 그냥 팬이라기엔, 길거리에서 작은 스피커 하나에 의지해 열심히 춤을 추고 있던 15세 목형규에게 반해 이후 6년간 물심양면으로 목형규를 뒷바라지 해온 프로듀서에 더 가깝다. 직접 콘서트홀을 빌려 무대에 세워주고, 보컬, 댄스 교사에 헬스 트레이너까지 구해준다. 최신 게임기부터 명품 브랜드의 패딩 점퍼와 노트북 등 만날 때마다 선물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은탁의 이 같은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목형규는 어느덧 첫 해외투어를 앞두게 된다.

이유리 작가. 민음사 제공

이유리 작가. 민음사 제공


그러나 목형규의 해외 투어를 뒤따르던 비행기가 추락하고, 은탁은 구조 요청을 하거나, 목형규를 지키기 위해 구조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져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택한다. 바로 이 “이타심이 생존본능을 이기는” 선택으로 인해 목은탁은 미지의 존재에게 구출되고, 인생을 뒤바꿀 기회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기회 앞에서 목은탁은, 최초로 목형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결론을 내린다.

소설에서 은탁의 헌신은 ‘받은만큼 돌려준다’는 공평의 감각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형규의 미소는 백만불짜리”이고 “백만불이면 12억4,0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이기 때문에, “나는 형규에게 12억4,000만원을 빚지고 있는 셈이고, 그걸 갚아 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은탁의 셈법은 상식과 합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입시, 취업, 승진, 부동산 등 남보다는 나를 이롭게 하는 데 밝아야만 생존이 가능한 한국사회에서, 어쩌면 은탁의 팬심은 우리의 인간성을 재발견할 한줄기 단서일지도 모른다. 설사 그게 완전무결하게 순수한 이타심이 아닐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뭐 어떤가? 선생님에게 칭찬 받고 싶어 인형을 양보하긴 했지만 그 인형이 상심한 여섯 살의 마음을 위로했던 것만은 변함 없으니.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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