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신작 드라마 '위아후위아' 공개
한 인물이 도착한다. 이탈리아 지중해 연안이다. 시기는 여름. 햇살이 눈부시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자연을 즐긴다. 풍경은 평화롭지만 마음은 어지럽다. 새로 등장한 인물 때문에 사람들 가슴에 풍랑이 인다.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들의 이야기 얼개다. ‘아이엠러브’(2009)의 엠마(틸다 스윈튼)도, ‘비거 플래쉬’(2015)의 마리안(틸다 스윈튼)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엘리오(티모테 샬라메)도 누군가의 방문을 통해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난다.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이자 첫 드라마(8부작)인 ‘위아후위아(We Are Who We Are)’도 다르지 않다. 14세 소년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가 이탈리아에 도착하면서 화면을 연다. 프레이저의 가족은 전형적이지 않다. 엄마가 둘이다. 자신을 낳아준 아빠 겸 엄마인 사라(클로이 세버니)가 미군기지 지휘관으로 부임하며 가족은 이탈리아로 삶을 이식한다. 뉴욕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프레이저는 기지에 마련된 집부터가 불만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예정된 방황과 반항이 더욱 거세진다.
프레이저 뿐만 아니다. 기지의 아이들 역시 삶은 불안하다. 군인 가장의 전출로 3년마다 터전을 옮겨야 하는 미래가 그들의 마음을 흔든다. 프레이저는 부유하는 아이들 중 케이틀린(조던 크리스틴 시몬)에 눈이 박힌다. 케이틀린의 가족도 전형성과 거리가 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미국인이지만 엄마는 나이지리아 출신이고, 오빠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인이다. 케이틀린은 남자가 되고 싶어 한다.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은 금세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둘은 성정체성을 고뇌하며 사랑과 우정 사이를 오간다.
10대의 성장 드라마로만 한정 지을 순 없다.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어른들의 삶 역시 들여다본다. ‘위아후위아’의 어른들은 방황한다.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안정된 삶에 회의한다. 새로운 사랑에 설레고, 실연과 위계와 인습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이탈리아에 있는 미군기지는 미국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인종과 다양한 출신이 섞여 함께 일하고 복합적인 이유로 갈등한다. 보수와 진보의 상반된 시선이 드러난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국내에서도 열성적인 팬층을 구축했다. 영화는 극장가 예상을 넘어 관객 22만명을 모았고, ‘콜바넴’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주연배우 샬라메는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위아후위아’는 마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확장판 같다. 지중해의 오렌지 빛 햇볕이 산란하는 곳에서 젊은이들은 사랑을 속삭인다. 세상은 규정된 사랑이 아니라며 훼방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상영시간 132분 동안 엘리오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농밀한 감정을 밀도있게 그렸다면, ‘위아후위아’는 8시간 내외로 여러 인물의 정서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풍광은 인물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음악은 화면과 맞춤으로 조응한다. 청춘의 일탈이 찬연하고 유쾌하면서도 서글프다. 일상에서 비범한 순간을 끌어내며 관객의 자고 있던 세포를 깨우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재능은 여전하다.
드라마는 지난 9월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전편이 첫 공개됐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작품으로도 선정됐다(영화제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으로 열리지 않았다). 유명 영화제가 드라마를 상영작으로 선정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신체 노출 강도가 세다. 10대가 주인공이지만 10대가 보기엔 부적절하다.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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