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주식시장의 최대 위협은 코로나19 백신일 수 있다.”
얼마 전 증권전문가의 이런 전망을 들었을 때 머리를 쳤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만들지 말라 할 수는 없어도, 무조건 반길 일만은 아니겠구나.
겨울을 맞아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면서 백신, 치료제 개발은 더 간절해졌다. 억눌린 일상과 소비가 돌아와야 경제도 숨을 쉰다. 마침 다행스럽게 하나 둘 백신 개발 소식이 들린다. 쏟아지는 확진자를 보면서도 주가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건, 코로나 쇼크 이후 정상화된 경제를 앞당겨 상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백신으로 코로나19의 종식 시점이 가시화된다면? 경제는 머지 않아 다음 단계를 상상할 지 모른다. 경제의 균형 측면에서 필수적인 고민. 그간 앞뒤 안 가리고 풀었던 돈, 여기저기 던져놨던 임시 구호조치들을 거둬들일 궁리 말이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4조달러(4,400조원) 남짓이던 자산(빚)을 코로나19 발발 초기 3개월간 7조달러(7,700조원)까지 늘렸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후 10년에 걸쳐 풀었던 돈과 맞먹는다. 끊긴 월급 대신 현금을 나눠주고, 중앙은행의 금기였던 부실 회사채까지 사주겠다고 나섰다.
한국 경제에도 쌓인 비정상이 적지 않다. 올해 금융권이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코로나19 피해 계층에 제공한 금융지원은 250조원을 넘었다. 신규 대출, 만기 연장, 보증 지원 등으로 우선 이들의 고사를 막는 데 집중했다. 평소 같으면 없었을 비상이자, 비정상 조치다.
그 결과 우리는 기형적인 연체율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9월말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0.65%로, 코로나 충격이 없던 작년 9월보다 0.2%포인트 더 낮았다. 은행이 빌려준 돈은 코로나 사태로 크게 늘었지만(최근 1년간 189조원), 이자를 깎아주고 만기를 연장해 주니 부실채권은 반대로 2조7,000억원 줄었다.
정부의 이런 감면, 유예 조치는 내년 3~6월까지다. 어느 시점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다시 상점을 찾고, 나들이에 나선다면 비상 조치는 연장할 명분을 잃을 것이다. 250조원을 지원 받아 근근이 버티던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백신의 등장이 희망보다, 가혹한 구조조정 통지서로 돌변할 수 있는 이유다.
유동성의 홍수에 잠겨 있던 부실의 속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면, 코로나 쇼크 때 못지 않은 실직과 폐업이 잇따를 수 있다. 백신으로 지금의 ‘유동성 장세’가 끝나고 금리마저 상승세를 탄다면, 본격적인 부실기업 옥석 가리기 속에 동학개미의 ‘영끌’ 투자도 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팬데믹이 걷히면 예전의 일자리는 그대로 회복될까. 시중은행들은 이미 내부적으로 파격적인 인력감축 계획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거리두기’ 사회에서 반강제로 시행했던 화상 회의, 재택 근무, 온라인 거래 등이 생각보다 잘 돌아갔다는 경험 때문이다.
진작부터 인건비 부담을 느끼던 경영진은 코로나 시대의 영업ㆍ업무 환경 변화를 인력 구조조정의 더 없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다. 코로나 면역의 세상에선 어쩌면 번듯한 직장인이 지금보다 더 먹고 살기 어려운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의 짙은 안개가 걷히고 드러날 ‘진실의 시간’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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