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표 '막장 드라마'가 이번에도 통했다. 임성한·문영남 작가와 함께 '막장 트로이카'로 불리는 김순옥 작가가 쓴 SBS '펜트하우스'가 각종 논란 속에서도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달 26일 9.2%로 시작한 시청률은 최근 16%를 기록하더니 20%대 진입을 눈 앞에 뒀다.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가 귀해진 가운데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 보증수표로 떠오르고 있다.
'펜트하우스'는 100층짜리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헤라팰리스를 무대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교육과 부동산 문제를 깔아둔 채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신드롬까지 불렀던 JTBC '스카이 캐슬'과 '부부의 세계'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출생의 비밀부터 불륜, 선과 악의 대결 구도, 복수 등 이미 검증된 흥행요소들도 죄다 끌어모았다. 매회 사건이 휘몰아치는 빠른 전개로 높은 흡인력을 자랑하는 김순옥 작가 특유의 장기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드라마에는 대중의 공분을 끄집어내는 소재를 계속 보여주고, 당하는 약자가 있다. 이들이 마지막엔 복수하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발휘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문제는 시청률과 별개로 김순옥표 드라마의 미덕이 이 작품 속에선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선악구도를 그리고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면서 권선징악으로 내달리는 전개 과정에서 개연성은 사라졌다. 폭력적인 사건의 나열로 막장의 강도만 더했을 뿐이다. 헤라팰리스에서 중학생인 민설아(조수민)가 추락하는 첫 장면부터 그렇다. 피투성이가 된 채 조각상 위로 떨어진 민설아를 두고 주단태(엄기준)는 "저게 얼마짜리 조각상인데 왜 하필 저길 떨어져 죽어!"라고 소리친다. 시신의 손가락을 잘라내 보관하거나 시체 유기도 서슴지 않는다. 중학생들의 악랄한 학교폭력 묘사 장면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선과 악의 대결이 확실했던 김순옥표 막장의 특징마저 희미해졌다. 선한 편에 선 심수련(이지아)과 오윤희(유진)는 "자식을 위해서 악해질 수 있는 게 엄마"라며 더한 악행을 일삼는다. 이야기의 짜임새는 아랑곳 없이 자극적으로만 그리기로 작정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다.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내달리는 김순옥표 빠른 전개는 오히려 이러한 '개연성 없음'이라는 허점을 숨기기 위한 눈속임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극의 전개와 무관한 막장 요소들이 수위만 높이면서 드라마의 질적 저하는 물론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청률만 잘 나오면 다 된다는 방송사의 자성도 요구된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드라마의 가장 나쁜 점은 살인, 방화, 폭력 같은 강력 범죄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선한 역할조차 복수를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되는 것처럼 그리면서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져도 자극적 코드를 갖고 오면 시청률은 올릴 수 있다"며 "작품 내 통일성과 인과관계 없이 눈 앞에 보이는 응징에만 집중하게 되면 정작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교육이나 부동산 같은 심각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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