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소속 장애인들은 매일 청와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또 최근 들어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그들이 든 피켓에는 ‘현대판 고려장이 웬 말이냐’, ‘나는 이렇게 죽기 싫다’, ‘대통령님 살려 주세요’ 등의 절규로 빼곡하다.
이들이 시위에 나선 건 만 65세가 되면 최대 24시간 제공되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는 규정 때문이다.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사무실에서 만난 진형식 총연합회장은 “우리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만 65세 기준이 폐지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혼자서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은 활동지원급여를 신청, 최대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 65세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최대 4시간만 지원받을 수 있다. 진 회장은 “하루 종일 누워 생활하는 와상 장애인이나 발달지체 장애인은 사실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며 “장애인들이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부르짖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2017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활동지원 수급자인 장애인의 경우 만 65세가 되면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중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당시 보건복지부는 예산 등을 문제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중앙정부가 손 놓은 이 문제가 지속되자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방안 마련에 나선 상황.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올해 만 65세가 된 장애인 24명을 대상으로 일평균 11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체기능ㆍ자립생활 능력 등을 파악한 장애인 인정점수가 360점 이상인 장애인이 대상이다. 내년엔 30명을 추가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진 회장은 “지체장애 기준으로 만들어진 신체기능 기준표로 평가하다보니 신체는 건강하지만 인지능력이 떨어져 생활이 불가한 발달장애인은 거의 배제되고 있다”며 “취지는 좋지만 지만 지원 규모가 작고, 평가기준표도 현실과 맞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장애인들의 탈시설 권리 보장을 공약했지만 어렵사리 자립한 장애인들조차 활동지원이 끊겨 다시 복지시설로 들어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장애인 정책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마련하거나, 지자체와 절반씩 부담하는 식으로 만 65세가 지나도 계속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진 회장의 생각이다. 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장애인 261만명 중 만 65세 이상 중증 장애인은 약 20만명이다. 다행히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혼자 생활하기 힘든 장애인은 만 65세 이후에도 활동지원급여 신청자격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진 회장은 “장애인 생존권 사수의 길에 이제 한 걸음 나아갔다”며 “본회의 벽도 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장애인지원법 개정안은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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