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법관 정보 취합, 경찰·국정원과 다른 차원"
7년 전 법무부도 '소송중재인 성향 분석보고서' 의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재판부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청구 및 직무집행정지 조치를 취한 데 이어, 대검찰청에 수사의뢰까지 한 데 대해 현직 검사가 미국의 사례를 들어 반박 글을 게시했다. 미국에선 검사나 피고인 측이 재판부 성향을 분석하는 걸 당연한 일로 보고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이며, 법무부가 과거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만든 사례도 공개했다.
차호동 대구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는 27일 "공판중심주의, 당사자주의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우리 형사소송절차에서 검사·피고인 측이 사건 담당 재판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미국 예에서 찾아보겠다"면서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차 검사는 판사 정보들을 모아둔 미국 법률사이트 공개 정보, 재판부 정보 수집을 권하는 미국의 여러 법률 저서 내용들을 발췌했다. 차 검사는 차한성 전 대법관의 아들로도 알려져 있다.
차 검사는 "구글링을 통해 1분도 안 돼 찾은 캘리포니아주 법관 중 한 명에 대한 평가"라면서 미국의 한 법률사이트 게시글을 옮겨 붙였다. 여기에는 "성격/품행: 리 판사는 한 변호사에게는 '고집이 센 판사'로 묘사됐고 다른 변호사에게는 '통제에 집착한다'는 식으로 묘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그녀의 법정은 항상 혼잡하기로 유명한데 자신의 일정을 제대로 조정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평가도 나온다. 차 검사는 이를 근거로 "국내에서 간단한 구글링만으로도 (미국의) 개개 판사에 대한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고 그 내용 역시 매우 적나라하다"고 전했다.
차 검사가 언급한 미국 법률 저서들은 이 같은 '판사 성향 정보 수집 및 분석'을 변호사뿐 아니라 검사들에게도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검사협회(NDAA) 산하 검찰조사연구소(APRI)가 발행한 '검사를 위한 기초 공판기법'에서 "검사는 판사의 스타일에 익숙해져야 하고 공판전략을 그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권한 게 대표적이다.
차 검사는 해당 부분을 발췌하며 "공소유지와 무관한 경찰, 국정원 등이 법관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공소유지의 일방 당사자인 검사가 법관의 정보를 취합, 분석하는 것은 논의의 평면과 차원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재판 절차의 당사자인 변호사와 검사 모두 재판부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차 검사는 2013년 2월 법무부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분야에서 활동하는 중재인의 성향을 분석한 'ISD 중재인 연구'라는 용역 보고서를 국내 로펌에 의뢰한 사실을 전한 국내 한 언론 보도도 소개했다. 해당 기사에는 "보고서에는 중재인 72명의 국적, 법문화적 배경과 성향 등이 담겨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당시 법무부가 용역을 발주한 배경에 대해선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빠른 대처가 가능하도록 세계 주요 중재인의 리스트를 사전 작성하고 각 중재인의 판정 성향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과거 법무부의 사례에서도 '재판부 성향 파악은 소송 당사자로선 당연히 할 일'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에둘러 강조한 셈이다.
김용제 부산지검 형사1부 검사도 이프로스에 별도의 글을 올려 차 검사 의견에 힘을 보탰다. 김 검사는 해당 글에서 "미국 유학 시절 교과서로 쓴 책에서 (판사의 학력, 경력, 언론 보도 내역, 변호사 평가, 품행, 지식 등이 담긴) '연방판사연감' 자료를 추천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보수집 수단이 평이함에도 그 주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법이라 한다면 수긍하기 어렵다"며 "중앙지검 형사부 업무량이 과중해 반부패수사부 등이 일반 형사사건을 재배당받아 사건을 처리했다면 무도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고 할 것인가"라고도 따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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