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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를 택시에 두고 내리다

입력
2020.11.27 15:00
수정
2020.11.27 17:5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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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11월의 저녁, 회의 중에 나는 아이패드(이름: 납작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에 선물받은 납작이는 내가 휴대할 수 있는 동산 중에서는 가장 비싼 물건이었다.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 온 몸에 힘이 풀리고 감각이 흐려진다는 이야기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님을 절절히 깨달았다. 진행 중이던 회의에서는 원고 협업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 정신은 모든 게 헛되고 헛되며 헛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제하고 그 어떤 유의미한 사고도 자아내지 못했다.

동료 작가 분들은 내 눈동자가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일단 물을 먹였다. 모두가 이토록 큰 불행이 닥친 이상 당장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나는 내 육체에서 질질 새어나가는 정신을 애써 수습하고 그날의 경로를 따져 보았다. 두 군데에 전화를 돌리고 보니 택시에 아이패드를 놓고 온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탔기 때문에 나는 택시기사님의 전화번호를 곧장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마음 속에 희망이 조금씩 차올랐다. 오, 고통과 기쁨이 혼재한 우리의 감시 사회여.

하지만 이어진 통화는 기대한 만큼 유쾌하지 않았다. 기사님은 그런 물건이 차 안에 없었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곧바로 끊었다. 간절한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정신줄을 또다시 놓쳐 버렸다. 미약한 희망이 차오른 상황에서 좌절하니 충격이 더 컸다. 혹시라도 집에 가면 아이패드가 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방구석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USB-C 충전용 케이블이 말을 걸었다. “주인님, 돌아오셨군요. 제 짝꿍 납작이는 어디에 있나요?”

인터넷에서는 셀룰러 데이터에 연결되지 않은 태블릿을 택시에 두고 내린 이상 이번 생에서의 인연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파멸의 예언이 가득했다. 그런 택시 내 분실물은 잠금이 걸려 있는 태블릿이 부품 단위로 분해돼서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 속에 있던 절망이 분노로 치환되었다. 나는 몇 시간 전에 기사님과 했던 통화의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었다. 왜 그렇게 퉁명스러운 태도였지? 왜 문자에 답하지 않은 걸까? 온갖 악몽이 혼재한 잠에 빠져들 때쯤 마음 속에 기사님은 이미 악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전화 소리 때문에 알람보다 일찍 깼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나는 짜증을 잔뜩 내면서 전화를 받았다가 내가 전날 밤에 들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기사님이었다. 정신이 확 깼다. 원래 새벽과 오전에 운행하기 때문에 어제는 답하기가 힘들었고 오늘 아침에 그 뒤에 탄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시치미를 뗐지만 경찰과 차내 블랙박스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마술처럼 선량한 시민으로 변했다.

한 시간 뒤에 기사님께서 납작이를 직접 가져오셨다. 납작이를 가동하자 몇 시간 뒤에나 잠금을 해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누군가 사실상 불가능한 확률을 뚫고 패스워드를 맞춰보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악의는 존재했지만, 내가 어림짐작한 곳에는 없었다.

송구함과 민망함에 사례금을 많이 드렸다. 하지만 마음에 내린 무게는 가시질 않았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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