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비 저렴해 인근 일용노동자 쉼터로 이용
사망 장애인은 모텔 주인이 숙식 제공한 지인
60대 남성이 모텔 사장과 말다툼 끝에 홧김에 불을 질러 큰 불이 난 서울 마포구 모텔 방화 사건으로 숨진 피해자는 장애인과 일용직 노동자 등 사회취약계층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모텔은 오갈 곳 없는 이들이 저렴한 가격에 한 몸을 뉘일 수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쉼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발생한 모텔 방화 사건으로 숨진 40대 남성 김모씨는 주변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경기가 어려워 고향에서 생계를 꾸리기 막막했던 김씨는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지방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쳤다. 인근 주민들 역시 “김씨는 작업복을 입고 새벽같이 나가서 밤 늦게 들어와 잠만 자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마포 일대에서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인근 숙박시설의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자, 이 모텔은 저렴한 투숙비 덕에 인근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모텔을 운영하는 한모씨 부부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장기투숙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감이 줄어든 것을 알고 한 달 숙박비를 30% 이상 깎아주기도 했다. 이번 방화로 죽거나 다친 투숙객의 대다수가 일용직 노동자였다.
이번 화재로 숨진 또 다른 피해자인 50대 여성 피해자는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이 여성은 유일한 보호자인 친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다가, 언니마저 최근 허리 통증으로 거동이 어려워지자 이 모텔에 기거하게 됐다. 언니의 동창인 모텔 주인 부부가 두 달 전부터 이 여성의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했다. 모텔 주인 한씨는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소식을 몸이 아픈 언니에게 차마 말할 수 없다”면서 “조용히 따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화 사건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간 피해자들은 돈이 없어 지체 없이 퇴원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25일 화재로 연기를 흡입해 세브란스 병원으로 실려간 일용직 노동자 두 사람은 입원비가 아까워 서둘러 퇴원수속을 마친 뒤, 갈 곳이 없어 매캐한 탄내가 여전한 모텔 근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모텔 관계자는 “두 사람이 잘 곳이 없다고 해, 내 월세집에서 여름 이불을 덮고 함께 잤다”고 말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한 달 뒤면 모텔을 비울 예정이었던 한씨 부부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을 해줬으면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모텔 건물은 1970년 지어진 지상 3층 건물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관련법 개정에 따라 화재 안전에 관한 총 공사비의 70%를 지원하지만 여인숙이나 여관업과 같은 숙박시설은 해당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씨는 “오히려 돈도 없이 흘러 들어온 장기투숙객이 많아 고시원 보다 더 열악한 시설인데,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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