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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유신독재 시절인 1975년 4월 경찰이 당시 개신교계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 김관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박형규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장 등을 구속한 일이 있었다. 빈민지역 선교를 위해 해외 선교회에서 지원받은 자금 중 일부를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이들의 가족 생계비로 지출한 것이 '배임'이라는 이유였다. 이 사건 수사는 경찰이 맡았지만 배후에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목사들을 어떻게든 옭아매고 싶었던 중정이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판사 동향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훗날 과거사 진상 조사에서 밝혀졌다. 담당 검사와의 대화 등을 담은 이 보고서는 "판사의 언동 내용을 분석컨대 동 사건을 무죄 선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국위 손상" "반체제 위해분자 등의 대정부 비난구호로 삼을 계기 조성" 등을 우려했다. 그 과정에서 담당 판사는 자택은 물론, 시골 처가까지 가택수사당하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전언이지만 오죽했으면 판사가 "대법원 앞에 가서 목 매고 죽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
□중정의 이름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었지만 판사 사찰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판사 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1984년 즉심에서 시위 학생들에 형면제 선고를 했다가 친정과 시가의 가족 관계, 재산 사항을 샅샅이 조사당했다. 대법관을 지낸 박시환 판사도 인천지법 시절 비슷한 이유로 안기부 압력을 받다 6개월 만에 인사 조치됐다. 현대사 속의 사법부 오욕을 담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사법부-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삼권분립의 상징이자 법치주의의 수호자로서 판사에 대한 위해와 압박, 공작은 정보기관만의 문제도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무장군인이 법정을 짓밟는 사건도 있었고, 최근 사법농단처럼 사법부 스스로 헌법이 부여한 권위를 내던진 사례도 있다. 법무부가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청구 및 직무집행정지 명령을 내리며 이유 중 하나로 '판사 불법사찰 책임'을 들었다. 검찰 주장대로 "정상 업무"임이 밝혀져 또다른 사법부 독립 침해 사례로 기록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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