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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입력
2020.11.24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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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머니볼' 스틸컷.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제공

영화 '머니볼' 스틸컷.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제공


언제 봐도 잘생긴 배우 브래드 피트가 나온 '머니볼'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오클랜드 에이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영화화했는데, 저예산 구단인 오클랜드 팀이 통계자료에 기반한 영리한 스카우트 전략과 경기 운영으로 세 배가 넘는 예산을 가진 뉴욕 양키스와 대등한 성적으로 정규 시즌 우승을 한 2002년 시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후 통계자료에 기반한 운영은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도 확산되어 이제 대부분의 팀들이 통계자료 분석 전문가를 두고 그들의 분석에 기반해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스포츠에서 이런 '통계 혁명'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빌 제임스이다. 취미로 야구 통계를 분석한 글을 모아 자비로 출판하면서 '세이버메트릭스'라 불리는 야구 통계학을 시작한 인물이다. 빌 제임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통계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많은데, 그중 한 명이 네이트 실버이다. 실버는 야구 통계 분석가로 활약하다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세이버메트릭스'를 선거에 적용해 결과를 예측하는 정치 분석가가 되었다. 그해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인단 수를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날렸고, 통계 모형과 여론조사 자료를 활용한 선거 예측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실버를 비롯한 선거 예측 전문가들이 스타일을 구겼다. 지난번에는 클린턴 장관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실패했고, 이번에는 바이든 후보의 낙승과 민주당 의회 장악을 예측했는데, 바이든 당선자가 이기긴 했지만 그 차이가 예상보다 작고 또 하원에서는 오히려 의석을 잃었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전문가들의 예측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이지만 바이든 당선자가 52%, 트럼프 대통령이 48%를 득표할 것으로 보이고 선거인단 수에서도 306 대 232로 앞서, 예상된 대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근소한 차이로 이긴 것도 아니다. 대략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을 때와 비슷한 결과다.

하지만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후보가 8%포인트 이상 앞서고 경합주에서도 여유 있게 이기는 것으로 나타난 걸 고려하면, 여론조사와 그에 기반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은 분명하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분분하고 선거 예측은 물론 선거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빗나간 여론조사에 대한 실망은 이해하지만, 성급한 여론조사 무용론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응답률이 5%를 밑도는 여론조사로 복잡하고 역동적인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론조사, 그리고 그 자료와 통계 모형을 이용한 선거 예측이 없다면, 우리는 더 부정확한 자료와 근거 없는 추측에 휘둘리게 되지 않을까? 또 선거야 기다리면 그 결과를 알게 되지만, 여론조사는 다른 중요한 정책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가 큰 엘리트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여론을 폭넓게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다. 그리고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선거 예측처럼 2~3%의 오차가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어서, 잘 설계된 여론조사는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빌 제임스가 좋은 통계자료가 없을 때는 나쁜 통계자료라도 있는 게 아예 통계자료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지금 곱씹어 볼 만한 충고라는 생각이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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