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오글 목사와 시노트 신부

입력
2020.11.19 18:00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조지 오글 목사의 한국 추방을 보도한 1974년 12월 15일자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 캡처

조지 오글 목사의 한국 추방을 보도한 1974년 12월 15일자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 캡처


“나는 한국의 법보다 내 신념을 선택하겠다.”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양심수들을 도와준다는 이유로 1974년 12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당했던 조지 오글 목사가 추방 직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5일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별세한 오글 목사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인권 탄압 상황을 세계에 알렸던 현대사의 용감한 증인이다.

□1954년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해 인천에서 도시산업선교회를 꾸린 뒤 목회 활동과 노동자 권익 보호 활동을 하던 오글 목사는 박정희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결국 미국으로 추방된 그는 미국에서도 한국의 인권 탄압 실태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어느 교회 어느 대학에서 강연한다는 광고만 나와도 중앙정보부의 현지요원들이 그곳을 찾아가 “빨갱이니 절대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집요하게 괴롭혔다.

□1970년대 반(反)유신 활동의 주축은 대학생과 종교인들이었지만 이를 외부에 알릴 수 있었던 이들은 유신정권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오글 목사를 쫓아낸 유신정권은 이듬해 4월 9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양심수 8명에게 사형을 집행한 직후 이 재판을 ‘불법 재판’이라고 주장하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1929~2014)도 미국으로 추방한다. 유신정권은 이들에게 "정부와 교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신자들을 반정부 시위에 가담케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신약성서를 인용하며 합법적인 박정희 정권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까지 몰아붙였다.

□오글 목사는 사회 구원을 강조하는 진보 성향의 감리교 목사였고, 시노트 신부는 ‘착취받는 노동자들은 공산주의자 아니면 범죄자가 된다’고 생각했던 보수적인 성직자였다. 하지만 성향이 다른 이들을 정의의 투사로 뭉치게 한 건 양심의 소리였다. 인혁당 양심수들이 공개재판 받기를 바란다는 기도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오글 목사)되고, 이들의 가족을 위로하려다 경찰에 사지가 붙들린 채 끌려 나오는 고초(시노트 신부)도 겪었지만 이들은 생전 “우리가 겪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겸손해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고인들에게 진 빚이 크다.


만년의 조지 오글(오른쪽)목사와 부인 도로시 오글 여사. 페이스북 캡처

만년의 조지 오글(오른쪽)목사와 부인 도로시 오글 여사. 페이스북 캡처



이왕구 논설위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