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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뒤 '안전 고삐' 풀리는데, 킥보드·보행자·車 뒤섞인 거리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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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뒤 '안전 고삐' 풀리는데, 킥보드·보행자·車 뒤섞인 거리 어쩌나

입력
2020.11.20 12:00
수정
2020.11.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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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도로교통법, 내달 10일부터 적용
만13세 이상 무면허로 킥보드 주행 가능

전동킥보드에 올라탄 한 시민이 이달 3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인도 위에 주차된 다른 전동킥보드를 피해 주행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전동킥보드에 올라탄 한 시민이 이달 3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인도 위에 주차된 다른 전동킥보드를 피해 주행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퍼스널 모발리티·PM) 이용자가 산업활성화 등 명목으로 급증하면서 안전사고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한 사고 후 처리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탑승자와 보행자 위험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가 올해 5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내달 10일부터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안전수칙을 사전에 숙지할 수 있는 면허제도가 사라져 사고 위험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 9월 외국인 A(30)씨는 인천의 한 도로에서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운행하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던 남성을 들이받고 도주했다. 피해자는 6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진단을 받았다.

개정 법에 따르면 앞으로 PM 이용자들은 차도뿐만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전거 전용도로가 워낙 적고, 그나마 설치된 전용도로도 보행자 겸용도로가 대부분이라 보행자와 PM이 뒤엉키는 대혼란이 예상된다. ‘서울 자전거길 안내 지도’를 살펴보면 2018년 기준 서울의 자전거 도로는 총 916㎞였는데, 이 중 자전거만 달릴 수 있는 도로(자전거 전용도로·자전거 전용차로)는 21%(193㎞)에 불과했다. 80% 정도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611.6㎞)이거나 자전거 우선도로(110.6㎞)로 분류돼 있어 PM 이용자들은 보행자 또는 자동차 무리에 섞여서 주행할 수밖에 없다.

한 대의 전동킥보드에 탑승한 두 시민이 3일 서울 마포구 서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한 대의 전동킥보드에 탑승한 두 시민이 3일 서울 마포구 서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에 따라 서울시는 최근 보행안전종합계획을 발표하고 다음달부터 3차로 이상의 맨 오른쪽 도로를 전동킥보드, 자전거 등이 이용하는 ‘지정 차로제’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차로를 운행하는 승용차는 시속 20㎞ 이하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는 차로 주행이 위험하다 보니 전동킥보드 운전자들이 불가피하게 인도로 올라오는 상황”이라며 “PM 차로를 별도로 지정하고 이 차로를 이용하는 승용차의 속도를 줄이면 보도로 올라오는 비율도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서울시 대책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버스전용차로가 가장자리에 있을 경우 PM이 정차한 버스를 피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다”며 “한국의 교통여건 상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PM은 주로 골목길 이면도로를 달리는데 과연 3차로 이상 큰 도로에 지정 차로를 만드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달 9일 서울 성동구 이면도로를 주행하던 킥보드가 다른 방향에서 직진하던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다. 현재 헬멧 등 보호장구 미착용시 부과되던 범칙금 2만원이 사라지고, 인도 주행에 따른 범칙금도 현행 4만원에서 3만원으로 낮아지는 등 안전관련 규제가 완화됐다. 사고 발생 시 보험처리도 통일된 규정이나 방향이 없어 공유업체와 보험사마다 제각각인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보행자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이달 10일 '무보험차상해특약 표준 약관'을 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전동킥보드 사고로 보행자가 다칠 경우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가 치료비를 우선 지급하고, 추후 보험사가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PM 이용자의 나이가 낮아지면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증가할 텐데, 피해자 측이 자동차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현실과 정부 정책의 괴리가 커지자, PM 공유업체와 보험사는 새로운 보험상품을 출시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한화손해보험은 국내 최대 공유업체인 라임코리아와 손 잡고 탑승자의 상해사망사고를 보장하기로 했다. DB손해보험 역시 PM 이용자의 운전 중 상해 위험을 보장해주고, KB손해보험 역시 공유업체 빔모빌리티코리아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라임코리아는 도로교통법 개정 이후에도 기존처럼 만 18세 이상 사용자만 자사 PM을 대여할 수 있도록 하고 면허등록도 현행처럼 시행하기로 했다. 또 씽씽은 내년부터 블랙박스가 탑재된 제품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업계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근본적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PM 전용 보험상품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일본 등은 PM 관련 보험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9월 ‘개인형 이동수단의 관리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PM 기본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대여사업(공유업체) 등록제 운영, 피해 배상 보험가입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준상 국토교통부 모빌리티정책과 과장은 “현재 PM 공유업체는 자유업으로 분류돼 있어 보험가입을 의무화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보험가입 등 등록기준을 충족한 공유업체만 대여사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에서 PM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향후 자전거도로를 설계할 때 PM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기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예 PM 이용자격을 도로교통법 개정 전(16세 이상·원동기 면허 소지자)으로 돌리고, 제한 속도를 시속 25㎞에서 20㎞로 낮추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17일 발의했다. 기존보다 강력한 규제책이지만, 외국에 비해선 여전히 약한 편이다. 전제호 책임연구원은 “프랑스 리옹시는 보행우선구역을 지정해 시속 8㎞로 운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도 보호구역을 지정해 제한속도를 대폭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이성택 기자
이인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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