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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조작 폭로한 조지 오글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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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조작 폭로한 조지 오글 목사 별세

입력
2020.11.17 16: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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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글 목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지 오글 목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4년 인혁당 사건 조작 사실을 폭로해 미국으로 추방됐던 조지 오글(한국이름 오명걸) 목사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의 소도시 라파예트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향년 91세.

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오글 목사는 외국인이자 종교인으로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해외에 알릴 수 있었던 중요한 인물”이라며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목사의 업적과 뜻을 정리하고 기릴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고인은 1954년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미국을 오가며 노동자의 권리 옹호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그가 1962년 인천의 작은 초가집에서 시작한 인천산업선교회는 인천 지역 노동운동의 모태가 됐다.

미국에서 ‘노동 사제’에 대해 공부했던 고인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국내에 산업선교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신분으로 노동자가 될 수 없었기에 자신은 공장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과 선교에 힘쓰는 한편 동료 한국인 선교자들에게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을 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일깨우도록 권했다. 이 같은 노동운동으로 인해 그는 끊임 없이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다.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지 2년 만인 1973년 서울대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아 강단에 선 그는 박사학위를 갖고 있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관련 강의를 했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린 뒤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 받은 이들을 위해 싸우다 1974년 12월 추방당했다.

고인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인혁당 사건의 진상에 대해 증언했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리려 했다.

한국의 민주화 이후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는 등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2002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해외 민주인사 초청 사업으로도 방한했다.

올해 6ㆍ10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 국민포장을 받았으나 파킨슨병 등 건강 문제로 직접 참석하진 못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도로시 린드먼 여사와 네 자녀가 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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