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성철 스님의 법문을 모은 책 '자기를 바로 봅시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떤 도적놈이 나의 가사 장삼을 빌려 입고 부처님을 팔아 자꾸 죄만 짓는가." 능엄경을 인용한 1981년 1월 20일의 이 해인총림 방장 대중법어에서 성철 스님은 "승려가 되어 가사 장삼을 입고 도를 닦아 도를 깨쳐 중생을 제도하지는 않고 부처님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은 부처님 제자도 아니요, 승려도 아니요, 모두 다 도적놈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일갈했다.
□이 설법을 한 날은 마침 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날이었다. 스님은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고 대신 그 유명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담긴 종정 수락 법어만 보냈다. 조계종은 득도나 중생제도는커녕 오랫동안 종정과 총무원장의 갈등 등 너무도 세속적인 다툼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 그래서 기대도 컸지만 성철 스님이 10여년 종정을 맡는 동안 이런 행태가 바로잡힌 것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스님이 열반송에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이 수미산보다 더하구나"고 했겠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대중강연, 명상문화 확산 등으로 인기를 구가하던 혜민 스님이 최근 TV에서 자신의 집을 소개한 뒤 '풀소유' 논란에 휩싸였다. 통념의 스님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오는 위화감에 불을 붙인 건 미국인 현각 스님의 신랄한 비판이었다. 과거에도 혜민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현각은 혜민을 향해 "연예인" "기생충"이라 했다가 그와 통화했다며 하루 만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칭찬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혜민을 겪어 본 문화계 인사들 중 불쾌함을 말하는 이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인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과거 트위터를 보면 그의 수양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도 하다. 다만 그의 활동이 스님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성철 스님은 불상에 절하고 절에 시주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불공이라고 했다. 혜민의 활동 역시 그런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