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를 거부하는 피의자를 처벌하는 법안 검토를 지시했다가 비판이 쏟아진 후 법무부가 13일 비밀번호 공개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범죄를 제한하고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밀번호 공개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사생활 보호의 권리, 양심의 자유 등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 만큼 적용 대상과 절차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입법 필요성부터 시작해 제한되어야 할 내용에 대해 신중하게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무부가 검토 중이라고 밝힌 내용은 법원의 명령이 있을 때 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등 절차를 엄격히 하고,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만이 아니라 이행강제금, 과태료 등 제재를 다양화하며, 공개 의무를 부과할 범죄를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 범죄나 사이버 테러 등 일부 범죄로 한정하는 방안이다. 추 장관이 영국에도 존재한다고 언급한 휴대폰 비밀번호 공개법도 테러나 중요 범죄에 한해 법원 명령이 있을 때 비밀번호를 밝히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나 사이버 테러 등 다수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 범죄에 한해 비밀번호 공개 의무를 지우는 것을 논의해 볼 수는 있다. 증거물을 압수해도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수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추 장관이 12일 이 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채널A 유착 혐의 수사를 받고 있는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언급한 것은 분명 비판받을 만했다. 이 법이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권을 보장하는 수사’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기본권 침해 소지가 분명한 만큼 입법의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절차와 대상은 엄격히 규정되어야 한다. 폭넓은 의견 수렴과 심도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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