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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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의 탄생

입력
2020.11.13 15:00
수정
2020.11.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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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내 앞니는 가지런하다. 이십대 초반, 유리벽에 부딪혀 앞니 4개가 부서지는 바람에 라미네이트 시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전엔 앞니 두개가 툭 튀어나와 있었던 탓에 별명이 토끼였다. 내가 토끼였을 때의 일이다. 방송 뒤풀이 회식자리에서 다들 기분 좋게 취해갈 무렵이었다. 입담이 좋아 언제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는 A가 내가 있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와 건배를 제안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두는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했다. 컵에 있는 술을 단숨에 비우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A가 갑자기 놀란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강작가, 원래 앞니가 그렇게 컸나?”

맥락 없는 그의 얘기에 모두가 황당해하며 웃었다. 나는 민망했지만 티를 내면 분위기를 망칠까봐 별말 없이 웃었다. A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키득거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보니까 좀 무서운데? 웃지 마. 웃지 마.”

태어나 한 번도 불만을 가져본 적 없었던 앞니 두 개가 그 날 이후로 몹시 거슬리기 시작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치과에 가서 교정상담을 받았다. 치과 의사는 확실한 교정을 위해서 아랫니 두 개와 윗니 두 개, 총 네 개의 어금니를 발치할 것을 권했다. 생니 네 개를 뽑을 만큼의 절박함은 없었던 터라 그냥 생긴 대로 살겠다고 말했더니 의사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환자분 지금 이십대 초반이라고 하셨죠.”

“네”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아름답지만 앞니가 살짝 아쉽죠.”

“뭐.. 네..”

“환자분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겠죠? 언젠간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겠죠. 그때는 지금 환자분이 가진 젊음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지 않겠네요.”

“?”

“지금 환자분은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피부도 좋지만 앞니가 살짝 아쉬운 여성입니다. 그러나 나중엔 그냥 앞니가 못생긴 할머니가 될 겁니다. 피부도, 눈도, 코도 그저 그런데 앞니는 유독 못생긴 할머니. 그렇게 되고 싶으세요?”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의사라는 사람에게 이런 식의 궤변을 들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오는 길에 내가 혹시 성형외과를 치과로 착각하고 잘못 찾아 온 건 아닌가 싶어 간판을 확인했는데 아주 명확한 글씨로 치과라고 적혀 있어서 한 번 더 놀랐다.

지하철 창가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며 토끼 같은 앞니를 가진 할머니를 상상했다. 하나도 우울하지 않았다. 튼튼하고 특별한 내 앞니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함께 한 정이 있는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가벼운 한마디 때문에 갈아치울 생각을 했다니. 그날, 콤플렉스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흔히들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 타인의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게 너무 쉬운 이 세상에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외모에 관한 농담은 해롭다. 아무리 가볍게 던진 말일지라도 그것은 순식간에 무거운 콤플렉스가 되기도 한다. 나도 그날의 A처럼 웃긴답시고 던진 농담으로 하나도 안 웃긴 결과를 만들까봐 두려웠다. 사는 동안 해롭지 않은 말만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강이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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