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썼어도 까매진 얼굴…"퇴근 후 눈·코에서 까만 물만 흘러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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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썼어도 까매진 얼굴…"퇴근 후 눈·코에서 까만 물만 흘러나와"

입력
2020.11.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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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전주공장 하청업체 노동자 이대우씨 인터뷰
"방진 안되는 마스크 지급 탓 먼지 들이마시며 일해"
"사측은 코로나19 탓 마스크 수급 어렵다는 핑계만"


"기침은 매일 달고 살아요. 퇴근 후 집에서도 눈과 코에서 까만 물이 나오고요."

노동자 이대우씨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업체 '마스터시스템'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이대우(33)씨는 12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먼지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대우씨의 모습. 성능이 좋지 않은 마스크를 쓰고 일한 까닭에 얼굴이 분진으로 뒤덮여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이씨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소재부에서 집진기(분진을 흡입하는 장치) 설비를 유지·관리·보수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전주비정규직지회 김광수 사무장에 따르면, 엔진을 만드는 소재를 제작하다보면 철가루 또는 유릿가루가 발생한다. 공장 안에 이런 가루가 돌아다니면 제품(엔진)에 불량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환풍기로 가루를 빨아들이는 작업은 꼭 있어야 한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썼던 방진마스크. 마스크 종류마다 방진 기능이 제각각 인 탓에 함께 일하고도 마스크 안쪽 색깔도 다르다.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이후 빨아들인 먼지를 없애기 위해 한곳으로 모아놓는다. 김 사무장은 "이 과정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분진을 직접 손으로 퍼낸다"며 "이 모든 과정을 하다보면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이씨는 "작업장 내부 공기 상태는 미세 먼지가 최악일 때와 비교해서 몇십배 갑갑할 정도"라며 "오징어 썩는 냄새가 마스크 안으로 들어온다"고 토로했다.

이씨를 포함해 주간조 5명과 야간조 5명 등 총 10명이 고정적으로 소재부에서 일한다. 여기에 같은 회사 소속으로 다른 부문에서 일하는 동료 직원들도 돌아가면서 소재부에 지원을 나오는데, 이들 역시 먼지 지옥을 겪는 셈이다.

"회사는 코로나19로 마스크 구하기 어렵다며 질 낮은 마스크 줬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진을 치우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더 큰 문제는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 평소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마스크를 써도 분진을 100% 막아내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성능이 더 떨어지는 방진 마스크를 지급받게 된 것이다.

김 사무장은 "원래 쓰던 3M 마스크는 그나마 필터가 달려있었는데도 턱밑이나 콧등으로 먼지가 들어오곤 했다"면서 "그런데 새로 교체된 마스크는 필터가 없어서 숨 쉴 때마다 분진이 마스크 안으로 다 통과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먼지로 뒤덮인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이런 까닭에 현장 노동자들은 마스크가 바뀐 직후 사측 관리 책임자에게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다"며 "기존의 3M 마스크로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김 사무장에 따르면, 회사 측은 코로나19로 마스크 수급이 어렵고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뿐 바뀐 것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직원들이 직접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 구매 가능 마스크가 적혀 있는 링크를 만들어 회사 측 관리자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나마 마스크 20개가 들어있는 박스 하나를 준 게 전부였다고 한다. 코로나19는 핑계일 뿐, 사측은 사실상 먼지와 전투를 벌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형편을 돌 볼 의지가 없었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생각이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김 사무장은 "매일 8시간 동안 공장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데 원칙대로라면 그때마다 마스크를 새로 받아야 한다"라며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 똑같은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작업 환경 개선이 제일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먼지구덩이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을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 전주지회 마스터시스템 노동자 40여 명은 9일부터 매일 7시간 50분 동안 파업을 벌이고 있다. 김 사무장은 "다른 것보다도 작업 중간중간 쉬는 공간만이라도 먼지가 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씨는 "원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관리직을 했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도 훨씬 상황이 안 좋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 "부모님께 현장 얘기 못해…걱정되고 죄송"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최해령씨의 모습. 성능이 좋지 않은 마스크를 쓰고 일한 까닭에 얼굴이 분진으로 뒤덮여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이씨에 따르면 다른 현장 노동자들도 이씨처럼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이씨는 고교 3학년 때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했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관리직으로 승진한 경우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고 누나 셋은 결혼해 출가한 까닭에 사실상 이씨가 경제 활동을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하지만 2016년 10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현대차 하청업체에 들어오게 된 이씨. 이씨는 "비록 하청업체지만 '현대차'는 아무래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니 당연히 패스트푸드점 보다는 처우나 일하는 환경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고 회상했다. 물론 실제 겪고 있는 현실은 영 딴판이다.

일하는 공간과 근무 상황이 적나라하게 알려지게 되면서 걱정되는 것은 없냐는 질문에 이씨는 "사실 부모님은 이런 상황을 모른다"며 "나를 보고 마음 아파하실까봐 걱정되고 죄송할 따름"이라며 울컥했다.

전주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뒤 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부모님께 현장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씨는 기자와 30분 가까이 통화하는 동안 내내 잔기침을 했다.


"작업복 한 벌밖에 지급 안 돼…팬티만 입고 일하기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한편 1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씨와 마찬가지로 소재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 최해령씨의 까매진 얼굴이 담긴 사진이 큰 주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은 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사무장은 "이 사진들은 현장 동료 노동자 개개인이 노조에 가입한 이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각자 찍어놓은 것"이라며 "수백장이 있는데 오늘 공개된 사진들은 최근에 찍은 것 중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역시 2019년 초부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 사무장은 "12, 13일 집회나 언론 보도 등으로 (우리의 현실이) 사회에 알려지면 사측이 또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치울 것 같아 미리 촬영을 해뒀다"며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한 마음으로 찍은 것"이라고 밝혔다.

영상과 사진에 나온 작업 현장은 그나마도 실제 현실보다 개선된 것이라는 게 김 사무장의 얘기다. 작업복이 1인당 한 벌밖에 지급되지 않은 탓에 평소에는 팬티 한 장만 달랑 입고 일한다고 한다. 김 사무장은 "직원들은 팬티만 입고 일하는 건 '전통 아닌 전통'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하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먼지로 뒤덮인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제공

13일은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다. 하지만 이씨가 한국일보에 전한 현장의 모습은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그 열악한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고 전태일 열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한 전태일이 (지금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고 하시겠지요"라고 답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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