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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드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너를 응원해'...셀린 시아마의 '걸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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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드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너를 응원해'...셀린 시아마의 '걸후드'

입력
2020.11.1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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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후드'.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영화 '걸후드'.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프랑스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의 2014년작 ‘걸후드’가 뒤늦게 한국 관객을 찾아왔다. 올 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예상 밖 흥행으로 역주행처럼 내걸린 영화다. ‘워터 릴리스’(2007)와 ‘톰보이’(2011)에 이어지는 성장영화 3부작의 최종편이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바로 이어지는 작품. 2014년 당시 칸영화제 감독주간을 비롯,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돼 극찬을 받은 수작이다.

'걸후드’는 시작부터 전복적이다. 반복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을 배경으로 미식축구를 하는 흑인 소녀들의 거친 몸싸움과 떠들썩한 환호가 가득하다. ‘소녀들 패거리(Bande de filles)’라는 프랑스어 제목과 오프닝 시퀀스는 어떤 성장통을 그릴 것인지 짐작케 한다.

주인공 흑인 소녀 마리엠의 얼굴은 미식축구 멤버들이 다 떠난 뒤에야 드러난다. 주변부 인물이란 암시다.

열여섯살 마리엠은 파리 외곽 공동주택에 사는 빈곤층이다. 엄마는 저임금 노동으로 하루 종일 집을 비우고, 건달 같은 오빠는 아버지 노릇을 하며 일상처럼 폭력을 휘두른다. 계속된 유급에 일반 고교 진학이 어렵게 된 어느 날 “괴짜 같아서 관심있다”며 접근하는 불량소녀 삼총사 레이디, 아디아투, 필리와 어울리게 된다. 이 때부터 마리엠 얼굴에 생기가 돈다. 머리 모양, 입는 옷이 달라지더니 옷을 훔치고, 푼돈을 빼앗고, 담배를 피고 나쁜 짓도 서슴치 않는다.

시아마 감독은 이 소녀들을, 애정있지만 거리를 유지하는 시선으로 그려낸다. ‘흑인 빈민 소녀는 이렇게 망가진다'가 아니라 ‘요즘 주변부 아이들은 이렇다'고 담담하게 말해준다. 잘잘못을 떠나 그 와중에 마리엠이 자신을 발견해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걸후드'에서 마리엠을 연기한 카리자 투레.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영화 '걸후드'에서 마리엠을 연기한 카리자 투레.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그 계기는 부모도, 선생님도, 오빠도, 남자친구도 아닌 또래 친구들이 만들어낸다. 패거리의 리더 레이디는 마리엠에게 “네가 원하는 걸 해”라고 말하며 승리(victoire)의 줄임말인 ‘빅(VIC)’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마리엠과 친구들은 훔친 드레스를 입고 미국 팝스타 리아나의 ‘다이아몬드’를 신나게 따라 부른다. 이 시퀀스는 영화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부분이다.

마리엠은 빅으로 다시 태어난다. 엄마가 하라는 청소 일을 거부하고, 오빠의 폭력에서 벗어나려 집을 나오고, 남자친구 문제도 자신이 결정한다. ‘맞짱’에서 패배한 레이디를 대신해 통쾌한 복수도 한다. 결국 범죄조직까지 흘러간 빅은 “아이 낳고 남편 위해 사는 인생은 싫다”며 남자친구의 청혼까지 거절한다.

‘걸후드’는 주변주 여성이 또래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설교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찬찬히 보여주는 영화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백인 남성 중심 프랑스 영화계에 대한 탄핵이기도 하다. “프랑스 영화계에 흑인 여성 배우가 얼마나 드문지 무척 놀랐다”는 시아마 감독은 넉달이나 걸려서야 연기경험이 없는 소녀들을 겨우 찾아내 캐스팅했다. 영화는 이 소녀들이 거의 지배한다. 어른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남성들은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영화 '걸후드'의 네 배우. 왼쪽부터 마리투 투레(필리 역), 린지 카라모(아디아투 역) , 카리자 투레(마리엠 역), 아사 실라(레이디 역) .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영화 '걸후드'의 네 배우. 왼쪽부터 마리투 투레(필리 역), 린지 카라모(아디아투 역) , 카리자 투레(마리엠 역), 아사 실라(레이디 역) . 블루라벨픽쳐스 제공

영화의 마지막은 상징적이다. 집으로 가던 마리엠은 잠시 멈춰 고민한다. 텅 빈 화면 오른쪽에서 등장한 그는 뭔가를 결심한 듯 왼쪽으로 사라진다. 마리엠이 어떤 결정을 했는지, 어떤 어른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하늘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 같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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