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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로고가 만들어낸 특권의 아우라... 샤넬 제국 뒤엔 파시즘 전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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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로고가 만들어낸 특권의 아우라... 샤넬 제국 뒤엔 파시즘 전략이 있었다

입력
2020.11.12 15:3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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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여성 패션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화려한 명성과 열정 가득한 그의 삶엔 권력과 부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허물도 남아 있다. ⓒ dopplermagazine. 을유문화사 제공

현대 여성 패션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화려한 명성과 열정 가득한 그의 삶엔 권력과 부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허물도 남아 있다. ⓒ dopplermagazine. 을유문화사 제공


이달 초 서울의 한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엔 새벽부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샤넬이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리 사두려는 경쟁이 불 붙은 것. 루머는 사실이었다. 샤넬의 대표 품목인 샤넬 클래식백을 비롯해 주요 상품 가격은 2%씩 인상됐고, 어떤 가방은 1,000만원을 돌파했다. 평범한 직장인들의 세달 치 월급을 헌납하고도 못 살 금액이지만,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비싸다고 욕하면서도 외면하지 않으니 샤넬은 가격을 올리고 또 올린다. 맹목적인 고급화 전략에 ‘샤넬’은 명품 브랜드를 넘어 욕망의 상징이 됐다.

CC로고가 박힌 검은색 퀼팅백, 리틀 블랙 드레스, 트위드 쟈켓, no.5 향수… 샤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많지만, 정작 샤넬 제국의 창립자인 ‘가브리엘 코코 샤넬’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간 평전이 더러 나왔지만 가난했던 소녀가 패션계의 억만장자가 된 사연이나 여성의 신체를 자유롭게 해방시킨 패션 철학 등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

이 책은 결이 좀 다르다. 정치와 패션이란 두 개의 렌즈로, 샤넬이란 한 개인의 복잡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들춰낸다. “지금 우리는 알고서든, 모르고서든 샤넬이 인간관계를 통해 흡수하고 유럽 역사에서 증류해낸 결과물을 입고 있다.” 책은 샤넬을 거쳐간 수 많은 애인들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관통하며 샤넬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현대 여성 패션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화려한 명성과 열정 가득한 그의 삶엔 권력과 부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허물도 남아 있다. ⓒ Keystone Prints. 을유문화사 제공

현대 여성 패션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화려한 명성과 열정 가득한 그의 삶엔 권력과 부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허물도 남아 있다. ⓒ Keystone Prints. 을유문화사 제공


12살에 부모로부터 버려져 수녀원 부설 기숙학교에서 불우하게 성장한 샤넬에게 ‘모방’은 지금의 샤넬을 있게 한 힘이었다. 패션계에 발을 담근 이후 샤넬은 당시 잘 나가던 애인과 친구 등 숱한 조력자들을 통해 정치, 철학, 미술, 음악, 문학의 지식을 흡혈귀처럼 집어 삼키고,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며 ‘샤넬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88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샤넬은 혼자였다. 결혼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나,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죽거나 떠났다. 사랑은 비극이었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연애를 거듭하며 샤넬의 미적 감각은 날로 치솟았다.

가령 샤넬이 가장 사랑했던 연인 보이 카펠의 옷장에서 발견한 헐렁한 남성 스웨터는 카디건의 효시가 됐고,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과의 인연으로 알게 된 러시아 조향사와 함께 no.5 향수를 탄생시켰다. 트위드 자켓은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영국 생활 중에 트위드 재질에 반해 만들어낸 것이다. “샤넬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포섭하고 모방한 다음,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서 타인이 모방하는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샤넬은 패션이 ‘입을 수 있는 인격’이자 ‘가장 쉽게 빌릴 수 있는 페르소나’가 되길 희망했다. 그의 바람대로 CC로고가 찍힌 제품들은 세련됨과 특권의 아우라를 장착한 마법으로 전 세계를 사로 잡기 시작했다.


코코 샤넬ㆍ론다 개어릭 지음ㆍ성소희 옮김ㆍ을유문화사 발행ㆍ888쪽ㆍ3만2,000원

코코 샤넬ㆍ론다 개어릭 지음ㆍ성소희 옮김ㆍ을유문화사 발행ㆍ888쪽ㆍ3만2,000원


샤넬의 남자들은 샤넬의 패션뿐 아니라 정치적 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혼돈과 격변의 시기, 샤넬은 극우파였던 폴 이리브와 약혼하며 민족주의, 반(反)유대주의에 갈수록 심취했다. 이리브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엔 독일군 장교와의 만남으로 나치에 협조하고, 부역했다는 기록도 있다. 샤넬에겐 더 중한 건 애국심보단 권력이었던 셈이다.

1930년대 이미 전 세계 여성들의 ‘스타일 대모’로 영향력을 키운 샤넬은 지켜야 할 게 많은 상류층 기득권이었고, 주변인들도 그러했다. 샤넬의 우경화 행보는 분명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한 기회주의적 선택이었다. 샤넬은 파업에 나선 수백 명의 직원들을 한꺼번에 해고할 만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선 무지했던 냉혈한 오너이기도 했다.

샤넬은 파시즘의 추종자이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패션이론가인 질 리포베츠키는 샤넬의 명품 브랜드를 창조하는 과정이 파시즘의 전략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파시즘과 샤넬리즘 공히 “개인숭배와 브랜딩, 동일시, 제복, 마법 같은 상징을 영악하게 이용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광과 소속감, 민주적인 엘리트주의를 만들어냈고 대중에게 제공했다”는 점에서다.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해 보이고 싶고, 더 우아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간파했던 샤넬은 전 세계 절반이 자신을 모방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던 샤넬의 말처럼 샤넬 제국이 만든 샤넬은 여전히 대중들에 의해 복제되고 있다.


현대 여성 패션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화려한 명성과 열정 가득한 그의 삶엔 권력과 부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허물도 남아 있다. ⓒ The Coincidental Dandy . 을유문화사 제공.

현대 여성 패션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화려한 명성과 열정 가득한 그의 삶엔 권력과 부를 향한 뒤틀린 욕망의 허물도 남아 있다. ⓒ The Coincidental Dandy . 을유문화사 제공.


디자인으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했던 세기의 아이콘이자, 권력과 부를 향해선 뒤틀린 욕망을 서슴없이 쏟아냈던 모순된 한 인간. ‘샤넬백 1,000만원 시대’ CC로고의 고상하고 세련된 아우라 뒤에 감춰진 진짜 샤넬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는 책이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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